(사진=AFP)
파이낸셜타임스(FT)는 24일(현지시간) 메타, xAI, 오라클, 코어위브가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필요한 대규모 차입으로부터 회사를 보호하기 위해 복잡한 금융 구조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핌코, 블랙록, 아폴로, 블루 아울 캐피털, JP모건 등 월가 금융사들은 이들 기술기업의 컴퓨팅 인프라에 최소 1200억달러 규모의 부채와 지분을 공급했다. 하지만 이 자금이 SPV를 통해 흘러들어가 기업 재무제표에는 잡히지 않고 있다는 게 FT의 설명이다. 이러한 차입 방식은 AI 인프라 자금 수요가 폭증하며 점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한 대형 금융기관의 고위 임원은 “데이터센터 건설 자금 조달을 위해 SPV로 흘러가는 수백억달러는 18개월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보편적인 방식이 됐다”며 “기술 업계는 (좋은) 신용도 덕분에 다른 어떤 산업보다 훨씬 많은 자본에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거대 기술기업들은 전통적으로 현금 창출력이 크고 부채가 적어 우수한 신용등급과 높은 투자자 신뢰를 누려왔다. 그러나 첨단 AI용 컴퓨팅 파워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며 기업들의 현금 보유고가 빠르게 소진됐고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돈을 빌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모건스탠리는 기술기업들의 AI 계획을 완수하기 위해선 외부 자금 1조 5000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문제는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는 자본 조달은 기업 신용등급 방어나 재무 지표를 더 좋아 보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FT는 “AI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칠 경우 누가 책임을 지고 리스크와 손실을 떠안을 것인지 불투명하게 만든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향후 AI 운영사들에 재무적 스트레스가 발생할 경우 그 충격이 어떤 방식으로 월가 전반으로 번질지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덧붙였다.
◇메타·오라클·xAI·코어위브, SPV 활용해 차입·자산 분리
개별 기업별로 살펴보면 메타는 지난해 10월 루이지애나에 건설 예정인 ‘하이페리온’(Hyperion) 데이터센터를 위해 블루 아울과 함께 300억달러 규모의 SPV ‘베녜 인베스터’(Beignet Investor)를 설립했다. 270억달러는 핌코, 블랙록, 아폴로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았고, 30억달러는 블루 아울의 자기자본으로 조달했다.
이러한 차입 방식은 이미 300억달러의 빚이 있는 데도 재무제표에서 확인되지 않도록 도왔고, 몇 주 뒤 회사채 시장에서 300억달러를 추가로 조달하는 것도 수월하게 만들었다.
오라클은 오픈AI에 막대한 데이터센터 전력을 임대해주기 위해 제3자를 통한 부채 구조 형성에 앞장서왔다. 이 회사는 크루소, 블루 아울, 밴티지, 릴레이티드 디지털 등과 같은 건설사·금융사들과 협력해 텍사스·위스콘신·뉴멕시코 등지에서 SPV 소유가 될 데이터센터를 다수 짓고 있다. 오라클은 이를 임대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할 경우 채권자들은 오라클이 아닌 데이터센터 관련 자산(센터·토지·반도체 등)에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이는 그동안 투자자들이 AI 서비스 수요가 줄어 데이터센터 가치가 떨어져도 궁극적으로 재무 위험이 해당 시설을 임대한 기술기업에 있다고 확신해 왔던 것과 대비된다.
일론 머스크의 AI 스타트업 xAI도 최대 125억달러 부채를 포함한 200억달러 규모 자금조달의 일환으로 유사한 구조를 추진 중이다. 이 SPV는 조달 자금으로 엔비디아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매입한 뒤 이를 xAI에 임대해줄 예정이다.
코어위브는 지난 3월 오픈AI에 컴퓨팅 파워를 공급하는 119억달러 규모 계약을 이행하기 위해 SPV를 설립했으며, 이 SPV가 의무 이행을 위한 부채를 부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코어위브는 7월 오픈AI 계약 이행 자금을 위해 26억달러를 추가 차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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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빗 캐피털 투자자들의 AI 붐 편승 열망도 새로운 방식의 차입 수요를 키우고 있다. UBS에 따르면 올해 초 기술기업들이 프라이빗 펀드에서 빌린 자금은 약 4500억달러로, 1년 전보다 1000억달러 증가했다. 이후에도 올해에만 1250억달러가 ‘프로젝트 파이낸스’(인프라 프로젝트 장기금융) 딜에 유입됐다고 UBS는 전했다.
결과적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은 1조 7000억달러 규모로 급팽창한 민간 신용 시장에 크게 의존하게 됐다. 이는 자산 가치 급등, 유동성 부족, 차입자 집중 등 새로운 위험을 낳고 있다. 예를 들어 오픈AI 한 곳만 봐도 1조 4000억달러 이상의 장기 컴퓨팅 계약을 맺은 상태다. 특정 고객이 흔들리면 여러 데이터센터 대출자들이 동시에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이들은 또 전력 공급 접근성, AI 규제, 현재 세대의 AI 하드웨어를 구식으로 만들어버릴 기술 변화 등에 대한 불확실성도 안고 있다.
이에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아마존 같은 기존 대형 데이터센터 기업들은 SPV 구조를 활용하지 않고 여전히 현금으로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채권 발행을 통한 직접 차입은 늘리는 추세다.
최근 월가 데이터센터 관련 거래에선 AI 부채를 담보부증권(ABS)으로 유동화하는 더 복잡한 구조까지 등장했다. AI 관련 부채를 묶어 증권화한 것으로, 이는 데이터센터 대출 리스크를 자산운용사·연기금 등과 같은 더 넓은 투자자층으로 분산시킨다고 FT는 설명했다.
UBS의 매튜 미쉬는 “결국 하이퍼스케일러(대형 클라우드·데이터센터 기업) 리스크를 떠안게 되는 것이 오히려 좋은 일이라고 느끼고 있다. 이들 기업의 재무제표와 신용도가 탄탄하기 때문”이라면서도 “SPV를 통한 자금 조달은 결국 잠재 부채를 추가하는 셈이어서 전체 신용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