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 5월 29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앞에서 열린 서초구·강남구 유세에서 ‘코스피 5000 시대’ 를 들어 보이며 경제회복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AI 붐도 한국 증시 상승을 도왔다. 블룸버그는 “AI 붐이 아시아의 인공지능 거래처로서 한국 주식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켰다”고 분석했다.
◇국내 투자자 47조원 미국行
하지만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을 사들이며 코스피 상승을 이끌었지만, 정작 한국의 개미투자자들은 반대로 움직였다. 이들은 한국 주식을 팔아 미국 주식 시장으로 자금을 옮겼다. 국내 증시가 70% 급등하는 동안 오히려 미국 투자에 집중한 셈이다.
블룸버그는 “코스피의 세계 최고 수준 랠리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 바로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라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공직 진출 전 개인 투자자였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자주 상기시키지만, 개혁 의제가 아직 국내 투자자들을 설득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국내 개인투자자들은 기록적인 330억달러(약 47조3000억원)를 미국 주식에 투입했다. 암호화폐와 해외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 등 고위험 자산도 선호했다.
블룸버그는 “자본이 밖으로 흘러나가면서 원화는 약세를 보였다”며 “블록버스터 주식 랠리조차 국내의 지속되는 회의론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켰다”고 전했다.
코스피 추이 및 이재명 대통령이 제시한 목표 (단위: 포인트, 그래픽=블룸버그)
블룸버그가 꼽은 다른 주요 거래들은 명암이 엇갈렸다. 트럼프 브랜드와 연계된 암호화폐들은 참담한 결과를 냈다.
트럼프는 취임식 직전 밈코인을 출시했고,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도 자체 토큰을 발행했다. 트럼프의 아들 에릭 트럼프는 아메리칸 비트코인이라는 채굴업체를 공동 설립했다.
각 코인은 출시 직후 급등했지만 곧 급락했다. 지난 23일 기준 트럼프 밈코인은 지난 1월 고점 대비 80% 이상 하락했다. 멜라니아 코인은 코인게코 기준 거의 99% 폭락했다. 아메리칸 비트코인도 지난 9월 고점 대비 약 80% 급락했다.
블룸버그는 “백악관에 우호적인 인물이 있어도 암호화폐의 핵심 패턴을 벗어날 수 없었다”며 “가격이 오르면 레버리지가 밀려들고, 유동성이 고갈되는 구조였다”고 전했다.
◇‘빅쇼트’ 버리, AI 거품 경고
2008년 금융위기를 예측해 ‘빅쇼트’로 유명해진 투자자 마이클 버리가 AI 거품을 경고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달 3일 AI 대표주인 엔비디아와 팔란티어의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풋옵션’을 보유하고 있다고 공개했다. 풋옵션은 미래 특정 시점에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팔 수 있는 권리로, 주가가 떨어질수록 수익이 난다.
버리가 설정한 목표 가격이 충격적이었다. 엔비디아는 당시 주가보다 47% 낮은 수준, 팔란티어는 76%나 낮은 수준이었다. 이는 AI 관련주가 현재 가격의 절반 이하로 폭락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이었다. 버리의 공개 후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주가는 급락했다가 이후 반등했다.
버리가 얼마나 벌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가 X(옛 트위터)에 남긴 단서에 따르면 팔란티어 풋옵션은 3주도 안 돼 최대 101% 수익을 냈다.
◇유럽 방산주 150% 급등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축소 방침은 유럽 정부들의 국방 예산 증액을 촉발했다. 지난 23일 기준 독일 라인메탈은 연초 대비 약 150% 급등했고, 이탈리아 레오나르도는 90% 이상 상승했다.
한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기준으로 투자를 꺼렸던 방산 분야에 자금이 쏟아졌다. 무기 제조가 윤리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투자 대상에서 제외됐던 기업들이 ‘안보 자산’으로 재평가받은 것이다.
시코모어 애셋 매니지먼트는 “올해 초까지 ESG 펀드에서 방산을 제외했지만,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며 “방어용 무기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방산주는 지난 23일 기준 연간 70% 이상 상승했다. 골드만삭스 집계 결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 2022년 초보다 상승폭이 더 컸다.
골드만삭스 유럽 방산주 바스켓 지수 추이 (단위: 포인트, 자료: 골드만삭스, 그래픽=블룸버그)
전설적인 공매도 투자자 짐 차노스가 ‘비트코인 왕’으로 불리는 마이클 세일러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세일러의 회사 스트래터지는 비트코인을 대량 매집하는 전략으로 유명하다.
차노스는 이 회사 주가가 실제 보유한 비트코인 가치보다 지나치게 높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스트래터지 주식은 공매도하고, 동시에 비트코인은 매수하는 전략을 택했다. 회사 주가가 비트코인 가격보다 더 빨리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차노스는 지난 5월 공매도를 공개했고, 세일러와 공개적으로 설전을 벌였다. 스트래터지 주가는 지난 7월 고점을 찍은 후 하락하기 시작했다.
차노스가 공매도를 공개한 시점부터 지난달 7일 포지션을 청산할 때까지 스트래터지 주가는 42% 하락했다. 신뢰로 부풀려진 대차대조표는 가격 하락과 함께 무너졌다.
◇금값 사상 최고…‘평가절하 거래’ 논란
미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국의 과도한 부채 부담이 금과 암호화폐 투자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정부가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해 화폐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된 이른바 ‘평가절하 거래(debasement trade)’다. 고대 로마 황제 네로가 재정난을 해결하려고 화폐의 금 함량을 줄인 역사적 사례에서 따온 용어다.
지난 10월 미국 재정 전망에 대한 우려가 기록적인 정부 셧다운과 겹치면서 이 내러티브는 정점에 달했다. 투자자들은 달러를 넘어선 안전자산을 찾았고, 금과 비트코인이 동시에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평소 경쟁 관계로 여겨지는 두 자산이 함께 상승한 것은 드문 현상이었다.
하지만 거래 전략으로서는 복잡한 결과를 낳았다. 비트코인은 이후 암호화폐 시장 전반의 하락과 함께 급락했다. 달러는 어느 정도 안정됐다. 미 국채는 붕괴는커녕 2020년 이후 최고 실적을 기록할 전망이다. 성장 둔화와 금리 정점 도달로 안전자산 수요가 여전히 강하다는 방증이다.
반면 금은 계속 상승세를 이어가며 신고가를 경신했다. 금 시장에서만큼은 평가절하 거래가 지속됐다. 통화 가치 하락에 대한 광범위한 판단이라기보다는, 금리·정책·자산 보호에 대한 집중적인 베팅이었다.
금 가격 추이 (단위: 온스당 달러, 그래픽=블룸버그)
‘미망인 제조기’라는 별명으로 악명 높았던 일본 국채 공매도가 드디어 수익을 냈다. 이 별명은 수십년간 일본 국채 하락에 베팅한 투자자들이 계속 손실을 입으며 생긴 것이다. 일본 정부의 막대한 빚에도 불구하고 금리가 오르지 않아 공매도 투자자들이 번번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5년 상황이 바뀌었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과 대규모 재정 지출로 10년물 일본 국채(JGB) 금리는 2%를 넘어 수십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30년물 금리도 1%포인트 이상 올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리 상승으로 채권 가격은 급락했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일본 국채 투자수익률 지수는 지난 23일까지 올해 6% 넘게 하락해 세계 주요 채권 시장 중 최악의 실적을 기록했다. 국채를 보유한 투자자들은 손실을 입은 반면, 가격 하락에 베팅한 공매도 투자자들은 큰 수익을 냈다. 슈로더스, 주피터 애셋 매니지먼트 등 펀드들이 국채 매도에 나섰다.
일본 국채 투자수익률 추이 (단위: %, 그래픽=블룸버그)
같은 편이어야 할 채권 투자자들이 서로 등을 돌리며 한쪽이 큰 수익을 챙기는 일이 벌어졌다. 핌코와 킹 스트리트 캐피털 매니지먼트는 병원 인력 회사 엔비전 헬스케어 관련 거래에서 약 90% 수익을 올렸다.
엔비전이 파산 위기에 몰려 긴급 자금이 필요했을 때, 대부분의 채권 보유자들은 “추가 대출을 해주면 우리 돈을 못 받는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핌코와 킹 스트리트는 동료 투자자들을 배신하고 회사에 돈을 빌려줬다. 대신 회사의 가장 가치 있는 사업부를 담보로 받았다.
결국 이 사업부가 40억달러(약 5조7000억원)에 팔리면서 핌코와 킹 스트리트는 큰 돈을 벌었고, 나머지 채권 투자자들은 손해를 봤다.
◇패니-프레디 367% 급등
금융위기 이후 정부 관리 하에 있던 모기지 금융 거대 기업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이 2025년 큰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 재선으로 민영화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주가는 연초부터 지난 9월 고점까지 367% 급등했다.
앞서 8월 행정부가 두 기업의 기업공개(IPO)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모멘텀을 더했다. 5000억달러 이상 가치로 평가되며 약 300억달러를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됐다.
헤지펀드 매니저 빌 애크먼은 지난달 백악관에 민영화 제안을 제출했다. 마이클 버리도 이달초 강세 포지션을 공개하며 “더 이상 독성 쌍둥이가 아닐 수 있다”고 밝혔다.
모기지 금융기업 패니 메이와 프레디 맥 주가상승률 (단위: %, 그래픽=블룸버그)
터키 ‘캐리 트레이드’가 지난 3월 19일 단 몇 분 만에 붕괴됐다. 캐리 트레이드는 금리가 낮은 나라에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나라에 투자해 금리 차익을 챙기는 전략이다. 터키는 채권 수익률이 40%를 넘어 글로벌 투자자들이 대거 몰려 있었다.
하지만 3월 19일 아침 터키 경찰이 이스탄불의 인기 야당 시장을 전격 구속했다. 시위가 번지고 정국이 불안해지자 투자자들이 일제히 빠져나갔다. 리라화는 급락했고, 터키 중앙은행도 막을 수 없었다. 하루 만에 약 100억달러(약 14조원)가 빠져나가며 시장은 패닉에 빠졌다.
지난 23일 기준 리라화는 달러 대비 약 17% 하락해 세계 최악의 성과를 기록했다. 도이체방크, 밀레니엄 파트너스 등이 큰 손실을 입었다.
◇신용시장 ‘바퀴벌레’ 경고
2025년 신용시장에서 여러 기업의 파산과 구조조정도 이어졌다. 색스 글로벌은 22억달러 규모 채권을 재구조화했고, 트리컬러와 퍼스트 브랜드는 파산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0월 “바퀴벌레 한 마리를 봤다면, 보이지 않는 곳에 훨씬 더 많은 바퀴벌레가 숨어 있다”고 경고했다. 기업 파산이 하나둘 터지기 시작했다면, 아직 드러나지 않은 부실 기업들이 훨씬 더 많다는 의미다.
문제는 대출 심사가 너무 허술했다는 점이다. 수년간 저금리로 돈이 넘쳐나면서 대출 기준이 느슨해졌다. 일부 기업은 같은 자산을 여러 곳에 중복으로 담보로 잡는 사기까지 쳤지만, 대출 기관들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