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모스크바 ‘춤’(TSUM) 백화점. (사진=AFP)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러시아 모스크바의 유명 백화점 ‘춤’(Tsum)은 버버리, 구찌, 보테가 베네타, 생로랑, 발렌티노, 끌로에 등 고가 브랜드 상품을 대량 판매하고 있다.
EU가 2022년 도매가격 기준 개당 300유로(약 51만원)를 넘는 사치품의 대러 수출을 금지했다. 하지만 온라인 카탈로그에는 이탈리아 돌체앤가바나와 브루넬로 쿠치넬리 상품만 4000개 이상 판매 목록에 올라와 있다고 FT는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밀라노의 한 명품 업계 최고경영자(CEO)는 “이건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러시아를 방문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인터넷을 잠깐이라도 들여다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물건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에서 판매되는 명품들은 중국·UAE·튀르키예 등의 구매자들을 통해 재판매되는 방식으로 유통되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 내 판매 가격은 실제 가격보다 훨씬 높다.
FT가 춤 백화점이 판매 중인 600개 제품을 표본으로 뽑아 평균 가격을 산출한 결과 2626유로(약 445만원)로 집계됐다. 이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소매점에서 판매 중인 동일 제품 평균가(1229유로·약 208만원)의 두 배가 넘는다.
표본은 돌체앤가바나, 발렌티노, 보테가 베네타, 버버리 등 소위 ‘유명’ 브랜드의 가격 비교가 가능한 제품들로 구성됐다. 검증은 인공지능(AI)의 도움을 받아 전량 수작업으로 이뤄졌다.
가장 큰 가격 차이는 핸드백에서 나타났다. 유럽에선 평균 1900유로(약 322만원)였지만 모스크바에서는 5200유로(약 881만원)에 달했다. 시계는 유럽에서 평균 1만 7700유로(약 2998만원), 모스크바에서는 3만 3100유로(약 5607만원)에 팔렸다.
의류와 신발은 유럽에서 각각 평균 1508유로(약 255만원), 648유로(약 110만원)에 판매됐으나, 춤 백화점이 판매하는 가격은 평균 2679유로(약 454만원), 1092유로(약 185만원)로 집계됐다.
러시아 모스크바 ‘굼’(GUM) 백화점 내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티쏘 매장. (사진=AFP)
EU의 대러 제재에선 러시아 내 자연인·법인·단체를 대상으로 하거나 러시아 내 사용 목적으로 하는 판매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300유로 상한선은 통상 수출 신고서 상 기재되는 가치를 기준으로 한다. 사실상 도매 가격으로 업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소매가격으로 대략 1000~1200유로(약 170만~203만원) 수준이다. 규제 품목에는 트러플, 캐비어, 순종 말, 샴페인, 스포츠용품뿐 아니라 의류·가방·캐리어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사치품을 제3국 중개상에게 판매하고, 이 중개상이 다시 러시아에 되팔도록 하는 것은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고 FT는 설명했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루카 리산드로니 CEO는 지난해 9월 FT 인터뷰에서 “모스크바의 백화점에 계속해서 제품을 공급하고 있지만, EU가 정한 가격 상한선 내에서 컬렉션 제품들을 출하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 관세 자료에서도 EU에서 러시아로 수출된 브루넬로 쿠치넬리 제품 대부분이 개당 300유로 미만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튀르키예가 핵심 경유지로 고가 브루넬로 쿠치넬리 제품들이 러시아로 우회 수출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이러한 제재 회피 수요는 러시아 내 물류 산업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제3국을 통해 고가 유럽 제품을 러시아로 들여오는 구매 대행 산업을 키워냈다.
모스크바 기반 물류업체 ‘글로벌 스타일 임포트’는 “전 세계 최신 스타일과 트렌드에 대한 접근을 도와준다”고 홍보하고 있다. 관세 데이터에 따르면 이 회사는지난해 1분기 돌체앤가바나 제품 170만달러어치를 튀르키예·UAE를 경유해 들여왔으며, 대부분이 300유로 상한선을 크게 초과했다.
러시아 모스크바 ‘굼’(GUM) 백화점 내 돌체앤가바나 매장. (사진=AFP)
선적 서류 조작 등을 통해 여전히 수출이 이뤄지고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춤 백화점을 운영하는 머큐리 패션은 지난해 1분기 돌체앤가바나 제품 670만달러어치를 수입했다. 하지만 러시아 세관 기록이나 선적 서류에선 300유로 이상 제품은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돌체앤가바나는 자사 웹사이트에서 공식 리테일 파트너로 춤 백화점을 안내하고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이는 러시아 고객들이 EU 제재로 러시아 시장에서 유통이 차단된 상품들을 춤 백화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는 의미다.
FT는 또 돌체앤가바나가 모스크바에서 매장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춤 백화점이 제재 상한선을 크게 웃도는 돌체앤가바나 상품을 다수 판매하는 현 상황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