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AFP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5년, 노키아는 다시 일어섰다. 이번엔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인프라 기업으로. 세계 최대 AI 칩 업체 엔비디아가 10억 달러(약 1조4400억원)를 투자하며 노키아를 파트너로 선택했다. 노키아 주가는 하루 만에 25% 치솟았다.
1865년 핀란드의 작은 제지 공장에서 시작한 노키아는 160년간 세 번의 극적인 변신을 거쳤다. 고무 부츠를 만들다 텔레비전을 만들었고, 다시 휴대전화로, 이제는 데이터센터 네트워크로.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1일(현지시간) 노키아의 재기 스토리를 소개하며 “노키아의 여정은 볼만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전성기, 그리고 몰락
노키아의 전성기는 화려했다. 2000년 세계 핸드셋 시장 점유율 26.4%. 시가총액 2860억 유로(약 485조원)는 핀란드 국내총생산(GDP)의 4%에 달했다. 한 기업이 국가 경제를 떠받친 것이다.
‘벽돌폰’ 3310은 1억2600만대가 팔렸다. 작은 화면에서 뱀을 키우는 스네이크 게임은 중독성이 있었다. 노키아 핸드셋은 영화 매트릭스(1999)와 찰리스 엔젤(2000)에 잇따라 등장하며 대중문화의 상징이 됐다.
1992~2006년 노키아 전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요르마 올릴라는 당시 성공 비결을 이렇게 설명했다. “경쟁사들은 기술자가 회사를 운영했다. 우리는 마케터가 이끌었다. 사용자 친화적 디자인에 집중했다.”
그러나 자만이 화를 불렀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전환에 저항했다. 반응이 너무 느렸다. 안드로이드와 애플 iOS에 맞설 소프트웨어 플랫폼 재설계에 실패했다.
2011년 마지막 몸부림이 시작됐다. 마이크로소프트(MS) 윈도우폰 시스템을 채택한 루미아 시리즈. 하지만 시장은 냉담했다. CCS 인사이트의 벤 우드 애널리스트는 “관 속의 못이었다”고 회고했다.
2014년, 노키아는 결국 항복 선언을 했다.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휴대전화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에 54억 유로에 넘겼다. 2007년 377억 유로를 기록한 매출은 2014년 매각 당시엔 107억 유로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우드 애널리스트는 “노키아는 자신들이 이런 재앙적인 점유율 손실을 겪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고 말했다.
핀란드 에스포에 위치한 핀란드 기술·통신기업 노키아(Nokia) 본사 전경. (사진=로이터)
노키아 브랜드가 소비자 기억에서 사라져갈 때, 새 CEO 라지브 수리가 칼을 뽑아 들었다. 2013년 지멘스와의 네트워크 합작투자 지분을 17억 유로에 사들였다. 핸드셋 사업을 접은 후 이 네트워크 사업이 매출의 90%를 차지하게 됐다.
2020년 퇴임한 수리 전 CEO는 FT에 “약한 핵심 위에 회사를 세울 수는 없다”며 “노키아가 무엇이 될지 모호함을 제거하는 게 첫 번째 과제였다”고 말했다.
2015년, 더 큰 도박이 시작됐다. 프랑스 통신장비업체 알카텔-루슨트를 156억 유로에 인수한 것. 노키아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주주총회에서 개인 주주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수리 전 CEO는 “(주총에서 개인 주주들이) ‘하지 마라’고 말하더라. 하지만 나는 ‘몇 년 후 감사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고 회상했다.
승부수는 적중하는 듯했다. 하지만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중국의 화웨이와 ZTE였다. 더 발전된 기술로 무장한 이들은 영국 BT(브리티시텔레콤), 스페인 텔레포니카, 독일 도이치텔레콤 등 유럽 거대 통신사 계약을 따냈다. 노키아는 다시 위기에 빠졌다.
◇세 번째 변신, AI로
2020년 페카 룬드마르크가 CEO를 맡으며 노키아는 ‘클라우드 서비스, 데이터센터, 광학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세 번째 대전환을 시작했다. 지난해 2월엔 광학 네트워크 전문기업 인피네라를 23억 달러에 인수했다.
지난해 4월 새 CEO로 취임한 저스틴 호타드는 ‘AI 슈퍼사이클’에 올인했다. 노키아의 광학 기술은 데이터센터 간 초고속 정보 전달을 가능케 한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핵심 라우터도 만든다. AI가 돌아가려면 반드시 필요한 인프라다.
지난해 10월엔 엔비디아가 노키아에 손을 내밀었다. 10억 달러 투자와 통신망 AI 통합 파트너십. AI 시대의 ‘킹메이커’로 불리는 엔비디아의 선택이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노키아 주가는 25% 급등했다. 현재 시가총액 320억 유로. 전성기엔 못 미치지만 의미 있는 부활이었다.
샤즈 안사리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노키아는 사업이 작동하지 않을 때 과감히 잘라내는 드문 능력을 가졌다”며 “제품이 아니라 산업 자체를 바꿀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호타드 CEO는 “계속 싸우려는 의지가 노키아에 있다. 생존의 길이 직선이 아니란 걸 안다. 우리는 계속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160년 기업의 DNA는 ‘변신’이었다. 제지 공장에서 고무 부츠로, 텔레비전에서 휴대전화로, 이제 AI 인프라로. 노키아의 벨소리는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다만 일각에선 우려도 나온다. 시에나, 시스코 등 경쟁자가 많은 AI 시장의 변동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PP 포사이트의 파올로 페스카토레 애널리스트는 “고객들이 단일 공급업체 의존을 꺼린다”며 “AI 투자 수익에 상당한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10일(현지시간) 핀란드 에스포에서 열린 노키아 기자회견에 노키아의 새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된 저스틴 호타드(Justin Hotard)가 참석하고 있다. 노키아는 이날 경영진 교체를 발표했다. 기존 사장 겸 CEO인 페카 룬드마르크(Pekka Lundmark)가 이사회에 사임 의사를 밝혔고, 이사회는 저스틴 호타드를 차기 사장 겸 CEO로 선임했다. 호타드는 지난해 4월 1일부터 새 역할을 시작했다. (사진=AF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