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폭격으로 '일상' 된 정전…힘겨워도 견디는 우크라인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1월 02일, 오후 04:49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거주했던 여성 류드밀라 슈람코(40)는 2024년 두 쌍둥이 딸들을 데리고 서부 지역으로 이사했다. 새 거주지를 구할 때 그가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정전 대비가 잘 돼 있는지와 가스레인지 사용이 가능한지였다. 인덕션으론 전기가 끊겼을 때 굶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16시간 동안 정전됐던 때를 떠올리며 “에어컨도 엘리베이터 사용도 불가능했다. 요리도 할 수 없었다. 아이들과 함께여서 정말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러시아는 이번 겨울에도 우크라이나 에너지 인프라를 겨냥해 대규모 공격을 단행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일상적인’ 정전 속에 힘겹게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CNN방송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러시아의 공습으로 키이우 북부 비슈고로드에서 4일간 정전이 발생한 가운데 지난달 30 주민들이 ‘레실 과학 센터’에서 휴대기기를 충전하고 있는 모습. (사진=AFP)
키이우 시민들은 지난달 하루 평균 9.5시간 동안 전기 없이 지냈다. 에너지 회사들이 순환 정전을 시행하면서다. 지난달 27일 러시아의 대규모 공습 이후엔 키이우 내 주거용 건물 40% 이상이 난방이 끊겼다. 정전이 되면 난방도 함께 멈추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인들 입장에서도 전쟁 발발 이후 벌써 네 번째 맞이하는 겨울이다. 하지만 추위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고 있다. 결국 옷을 두텁게 입는 방법 말고는 대안이 없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은 전기가 들어오면 서둘러 밀린 빨래를 해야 한다.

밤이 되면 집안 전등은 물론 거리의 가로등도 켜지지 않아 외출은 항상 해가 떠 있는 동안에 해야 한다. 이마저도 노인들은 엘레베이터가 가동된 이후에야 가능하다. 휴대용 배터리 충전은 필수다.

식당이나 카페에선 똑같은 재료를 사용해 똑같은 양의 요리·음료를 구매해도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 자체적인 디젤 발전기를 사용하는 곳은 전기회사의 전력망을 이용하는 곳보다 가격을 더 비싸게 받는다.

학교에선 초·중·고 구분 없이 매달 대피 훈련, 응급 상황 시뮬레이션이 진행되지만, 학교에 다니지 않는 어린 아이들조차 공습 경보가 울렸을 때 신발을 얼마나 빨리 신고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정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슈람코는 “어두워지기 전에 귀가해야 하기 때문에 아침에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간다”며 “아이들이 공습 경보나 발전기 소리 등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깊이 잠이 든다. 이젠 너무 익숙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8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크리스마스 자선 TV 쇼 출연진들이 정전된 가운데 리허설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AFP)
오데사 등 일부 지역에선 러시아 공습으로 상수도마저 끊겼다. 오데사 국립 오페라발레극장의 솔리스트 파블로 스미르노프는 지난달 13일 소셜미디어(SNS)에 “불굴의 샤워기”라며 사무실용 정수기와 보조배터리로 만든 임시 샤워 시설을 보여주는 영상을 게재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한목소리로 언제 정전이 재개될 것인지 모른다는 점, 즉 불확실성이 가장 불안하다고 밝혔다.

슈람코는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항상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틀이나 사흘 동안 전기가 끊기면 어떻게 될지, 배터리를 충전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지 우리는 끊임없이 걱정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CNN은 “이제 우크라이나인들의 삶은 정전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면서도 “그러한 삶 속에서도 적응해 나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고 전했다.

키이우에 거주하는 세 아이의 엄마 옥사나 다닐루크는 “불은 꺼졌어도 삶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학교는 전기가 필요한 장비 없이도 계속해서 펜싱 선수들을 훈련시키고 있다. 음악학교에선 (스피커와 마이크 없이도) 학술 발표 연주회를 준비한다. 전기가 없다고 해서 삶을 멈출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슈람코 역시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불쌍하게 여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 도움을 줘야 한다. 4년 동안의 너무나도 긴 전쟁으로 국민들이 이미 과거의 삶은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모든 상황에도 우리는 더 강해지고 있다. 어디에 있든 모두가 삶을 위해 싸우고 있다. 우리가 하나로 뭉쳐 이 시기를 함께 극복할 수 있도록, 우리에겐 세계가 도와줄 만한 자격이 있다”고 호소했다.

지난달 22일 러시아의 에너지 인프라 공격으로 정전된 오데사 주거용 건물. (사진=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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