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노동시장·기업조직을 재편하는 힘…해고의 방아쇠가 아냐"

해외

이데일리,

2026년 1월 04일, 오후 06:51

[필라델피아=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는 늘 금리와 연준(Fed), 거시경제 전망이 주인공인 무대였다. 경기 둔화가 올지,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들지, 통화정책의 다음 수순이 무엇인지가 질문의 출발점이었다. 3일(현지시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올해 연차총회의 공기는 달랐다. 올해 학자들이 가장 많이 입에 올린 단어는 금리도, 인플레이션도 아닌 ‘인공지능(AI)’이었다.

AI가 일자리를 없앨 것인가. 이 오래된 질문은 이번 회의에서 방향을 틀었다. 다수의 발표와 패널 토론에서 반복된 결론은 하나였다. AI는 해고의 방아쇠라기보다 노동시장과 기업 조직을 다시 재편하는 힘에 가깝다는 것이다.

피터 맥크로리 앤트로픽 수석 이코노미스트 (사진=김상윤 특파원)
◇“현 AI능력으로도 이미 경제 혁신 가능”

생성형 AI 개발사 앤트로픽의 피터 맥크로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AI를 여전히 ‘다가올 기술’로 보는 시각에 선을 그었다. 그는 “현행 AI 모델의 능력만으로도 이미 경제를 혁신할 준비가 돼 있는 상황이다”고 단언했다.

맥크로리는 생산성 수치로 그 파급력을 설명했다. 그는 “현재 AI 모델이 경제 전반의 직업군에 적용하면 앞으로 10년간 노동생산성을 연간 약 1.8%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단순한 기술 보조 수준을 넘어서는 규모로 해석할 수 있다. 그는 이 수치가 그대로 현실화하겠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그는 “업무 적용 과정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을 고려하면 과대 추정했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했다. 동시에 그는 “이 분석이 현행 모델의 능력을 기준으로 한 만큼, AI가 더 복잡한 과업을 수행하도록 빠르게 개선한다면 오히려 과소 추정일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AI의 파급력은 이미 균등하지 않다는 점도 강조했다. 맥크로리 이코노미스트는 “워싱턴DC와 유타, 캘리포니아, 뉴욕, 버지니아 등 소수 주가 미국 내 AI 사용량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며 “전 세계적으로도 사용량이 지리적으로 집중되는 유사한 경향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산업혁명 초기에 지역 간 격차가 벌어졌던 장면을 다시 재현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노동시장 논의의 결은 점점 달라졌다. 로버트 시먼스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AI를 일자리 파괴의 주범으로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인간과 기업을 수동적 존재가 아닌 능동적 행위자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 생산성 충격이 특정 부문에서는 고용 감소를 낳았지만 다른 부문에서의 고용 증가로 충분히 상쇄해왔다고 설명했다. 생성형 AI 도입 이후에도 프리랜서 플랫폼 자료를 보면 영향을 받은 노동자가 실제로 다른 업무 영역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시먼스 교수는 “핵심은 AI가 일자리를 없애느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새로운 일로 이동하는 비용을 얼마나 낮추느냐다”며 “AI는 그 전환을 더 쉽게 만들 수 있다”고 평가했다.

로버트 시먼스 교수
◇“AI 대체보다 새롭게 가능해진 일 함께 봐야”

소니아 재프 마이크로소프트(MS) 수석 리서치 이코노미스트도 AI의 영향을 자동화 여부로 재단하는 접근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AI가 무엇을 대체했는지를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에는 할 수 없었고 AI때문에 새롭게 가능해진 일이 무엇인지를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노동시장 논의는 계속 같은 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재프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관측되고 있는 변화는 단순한 업무 대체가 아니다. 문서 작성·요약·분석처럼 개별 과업에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AI가 초안 작성, 자료 정리, 선택지 비교를 맡으면서 인간은 검토·판단·조정에 더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고 그 결과 이전에는 비용이나 시간문제로 시도하지 못했던 업무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AI의 영향은 개별 업무에서 협업 워크 플로, 직무 재설계로 확산한다”며 “문제는 이런 변화가 고용 통계에는 즉각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핵심을 보지 못하면 노동시장 논의는 해고 여부에만 머무르게 되고 실제로 진행 중인 직무 내부의 재편과 새로운 역할의 등장은 포착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소니아 재프 마이크로소프트 수석 리서치 이코노미스트 (사진=김상윤 특파원)
다만 재편의 결과가 모두에게 공평하지는 않다는 점도 함께 제기됐다. 로라 벨드캠프 컬럼비아대 교수는 AI 시대의 불평등 문제를 데이터 시장에서 찾았다. 그는 “AI는 기술이지만, 데이터는 연료다”며 “소비자는 자신의 데이터가 가치를 지닌다는 사실을 모른 채 거래에 참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벨드캠프 교수의 문제 제기는 AI가 노동을 어떻게 바꾸느냐를 넘어 그 변화가 누구에게 먼저 어떤 속도로 전달하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데이터 접근성과 활용 역량이 높은 기업과 지역은 AI를 통해 생산성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AI 기술이라도 실제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벨드캠프 교수는 또 “산업혁명 시기처럼 생산이 자본집약적으로 바뀌면 자본의 몫은 커지고 노동의 몫은 줄어들 수 있다”며 “AI에 따른 생산성 향상의 이익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고 말했다.

로라 벨드캠프 컬럼비아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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