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 접수 뒤 그린란드 노린다…트럼프의 `서반구 게임`

해외

이데일리,

2026년 1월 07일, 오전 07:57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덴마크령 그린란드 확보와 관련해 외교적 수단은 물론 미군 활용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거론하면서 미국과 유럽 동맹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중국 견제를 위한 국가안보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유럽과 미국 내 전문가들은 이를 미국의 ‘서반구 패권’ 강화를 노린 행보로 해석하고 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6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확보가 미국의 국가안보 우선순위라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대통령과 그의 팀은 다양한 선택지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고사령관의 권한 아래 미군을 활용하는 방안은 항상 선택지로 존재한다”고 언급해, 그린란드를 둘러싼 트럼프 행정부의 메시지가 한층 강경해졌다는 평가를 낳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안보 필요”…그러나 덴마크의 군사 협력 제안엔 미온적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그린란드는 미국 안보에 필수적”이라며 북극 인근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활동이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덴마크가 이미 미국에 그린란드 내 미군 주둔 확대를 제안했음에도, 백악관이 이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복수의 외교·안보 관계자들로부터 나오고 있다.

유럽의 한 국방 고위 관계자는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미국의 군사적 존재를 확대하는 방안은 오래전부터 논의돼 왔다”며 “백악관은 해당 제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다른 미국 측 소식통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서 원한다고 말하는 대부분의 요구는 덴마크와의 협상만으로도 충분히 충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 사안을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린란드는 북극과 북대서양을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된다. 미군은 이미 그린란드 북서부에 위치한 피투피크(Pituffik) 우주기지를 운영 중이며, 조기경보·미사일 방어 체계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크다.

자원 잠재력 역시 미국의 관심 요인이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그린란드에 우라늄과 흑연 등 핵심 광물과 함께 약 314억 배럴 규모의 석유 환산 자원, 148조 입방피트의 천연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자원 가치와 지리적 중요성이 맞물리며, 그린란드의 전략적 위상이 부각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린란드는 덴마크의 자치령으로, 덴마크는 미국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이다. 이에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 주요 나토 회원국 정상들은 최근 공동 성명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확보 구상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혔다.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는 “미국이 나토 동맹국의 영토를 군사적으로 공격한다면, 나토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안보 질서 전체가 멈출 것”이라고 경고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덴마크 등 7개국 정상들은 이날 발표한 공동 성명을 통해 “그린란드는 그린란드 국민에게 속한다. 덴마크와 그린란드 문제에 대한 결정 권한은 오직 덴마크와 그린란드에만 있다”고 밝혔다.

이들 정상은 그린란드의 안보는 미국을 포함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동맹국들과의 집단 협력을 통해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나토는 이미 북극 지역이 우선 과제임을 분명히 밝혔고, 유럽 동맹국들은 이에 발맞춰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며 “우리와 많은 다른 동맹국은 북극 지역의 안전과 적대 세력 억제를 위해 주둔군, 활동,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국가 외에도 핀란드,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의 외무장관들은 별도의 성명을 통해 그린란드가 자국 사안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북극 안보에 대한 투자를 이미 늘렸으며, 미국과 다른 나토 동맹국들과 협의해 추가적인 역할 확대에도 열려 있다고 밝혔다.

그린란드 누크 인근 해상에 빙산들이 떠 있다. (사진=AFP)
◇ 베네수엘라 이어 그린란드…확장되는 ‘서반구 전략’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집착은 최근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 이후 더욱 노골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미 특수부대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전격 체포한 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운영(run)”할 수 있으며 필요하다면 지상군 투입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를 트럼프가 새롭게 명명한 이른바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19세기 먼로 독트린을 한층 공격적으로 재해석한 서반구 지배 전략)의 실전 적용 사례로 보고 있다. 먼로 독트린이 외세 배제를 목표로 했다면, 트럼프식 독트린은 미국이 서반구 질서를 직접 관리·통제할 수 있다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라이언 버그는 “트럼프는 서반구를 ‘아메리카 퍼스트’의 연장선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베네수엘라에 이어 그린란드는 북쪽 축에서 같은 논리가 적용되는 대상”이라고 분석했다.

이 때문에 베네수엘라 작전 이후 유럽 지도자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의 위협을 더 이상 정치적 수사로만 보기 어렵다는 반응이 확산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덴마크 주재 미국 대사를 지낸 루퍼스 기퍼드는 “베네수엘라 사태와 그린란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장악 가능성을 언급하며 웃는 모습을 보고 진지한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설령 실제 병합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동맹과 신뢰, 국제 규범에는 이미 심각한 손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 강경 행보가 지지율 정체, 의회 권력 약화 가능성, 사법 리스크 등 국내 정치적 압박과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국내 입지가 흔들릴수록 서반구에서 미국의 힘을 과시하려는 유혹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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