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도 먹어라"…트럼프 행정부, 美 식생활 지침 개편

해외

이데일리,

2026년 1월 08일, 오후 07:19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7일(현지시간) 향후 5년간 적용될 ‘2025~2030 미국인을 위한 식이 지침’을 발표하며 수십년 만에 연방 영양 정책을 전면 개편했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보건복지부 장관과 브룩 롤린스 농무부 장관은 이날 워싱턴DC에서 “진짜 음식을 먹으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담은 새 지침을 공개했다.

이번 지침은 학교 급식, 저소득층 영양 지원 프로그램(SNAP), 여성·영유아·아동 영양 프로그램(WIC) 등 모든 연방 영양 정책의 기준이 된다.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을 다시 건강하게(MAHA)’ 운동이 실제 정책으로 구현된 첫 사례다.

김치 (사진=게티이미지)
◇단백질 섭취 최대 2배 증가

가장 큰 변화는 단백질 섭취 권장량의 대폭 상향이다. 새 지침은 체중 1kg당 1.2~1.6g의 단백질 섭취를 권고했다. 이는 2020년 지침의 0.8g 대비 최대 2배에 달하는 수치다. 68kg 성인 기준으로 하루 81.6~109g의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

지침은 계란, 가금류, 해산물과 함께 붉은 고기도 우선 섭취 식품으로 명시했다. 지침은 또 “과거 탄수화물 섭취를 늘리기 위해 단백질을 악마화했다”며 영양 밀도가 높은 동물성 식품을 적극 권장했다. “매 끼니마다 단백질을 우선 섭취하라”는 구체적 지침도 포함됐다.

◇초가공식품 강력 제한, 동물성 지방 재평가

초가공식품에 대해서는 사실상 섭취 제한 메시지를 보냈다. 지침은 “칩, 쿠키, 사탕처럼 설탕과 나트륨이 첨가된 포장·조리·즉석 식품을 피하라”고 명시했다. 대신 영양 밀도가 높은 식품과 집에서 만든 음식을 우선하라고 권고했다.

흰 빵, 밀가루 토르티야, 크래커 등 정제 탄수화물도 대폭 줄이도록 했다. 대신 통곡물을 하루 2~4회 섭취하도록 구체적 횟수를 제시했다.

지방에 대한 평가도 달라졌다. 새 지침은 첨가당이 없는 전지방 유제품을 하루 3회 섭취하도록 권장했다. 2000칼로리 식단 기준이다. 수십년간 유지됐던 저지방·무지방 유제품 권고가 사라진 것이다.

요리할 때 올리브유 같은 필수 지방산 오일을 우선하되, “버터나 우지(소기름)도 선택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케네디 장관이 선호해 온 우지가 공식 지침에 포함됐다.

◇알코올 수치 기준 삭제, 김치 첫 등장

알코올 섭취 관련 구체적 수치 제한이 삭제됐다. 2020년 지침의 ‘남성은 하루 2잔 이하, 여성은 1잔 이하’ 권고가 사라지고 “전반적인 건강을 위해 알코올 섭취를 제한하라”는 포괄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1980년 지침 제정 이후 46년 만의 변화다.

메흐메트 오즈 메디케어·메디케이드서비스센터(CMS) 국장은 “최선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라면서도 “알코올은 사람들을 하나로 모으는 사회적 윤활유”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김치의 등장이다. 지침은 장내 미생물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우어크라우트, 김치, 케피어, 미소 같은 발효 식품을 채소 및 고섬유질 식품과 함께 섭취하라”고 권장했다. 미국 국가 식이 지침에 김치가 건강식품으로 명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이 7일(현지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 국장 마틴 마카리와 메디케어·메디케이드 서비스센터(CMS) 수장 메흐메트 오즈가 뒤에 선 가운데 백악관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음식이 약”…의학계 엇갈린 반응

케네디 장관은 “미국은 국가적 건강 위기에 직면했다”며 지침 개편 배경을 설명했다. 미국 의료비 지출의 90%가 만성질환 치료에 쓰이고, 성인의 70% 이상이 과체중 또는 비만이며, 청소년 3명 중 1명이 당뇨병 전단계라는 것이다.

그는 “수십년간 미국인은 점점 더 아프고 의료비는 치솟았는데, 정부가 기업 이윤을 지키기 위해 ‘음식 같은 것들’이 공중 보건에 좋다고 거짓말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학협회(AMA)는 환영 입장을 냈다. 바비 무카말라 AMA 회장은 “초가공식품, 설탕 음료, 과다 나트륨이 심장병, 당뇨병, 비만을 유발한다는 점을 강조한 지침을 환영한다”며 “음식이 약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심장협회(AHA)는 우려를 표명했다. 협회는 “소금 양념과 붉은 고기 섭취 권고가 의도치 않게 소비자들이 나트륨과 포화지방 권장 한도를 초과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심혈관 질환의 주요 원인이라는 이유에서다.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월터 윌렛 교수는 “새 지침이 붉은 고기와 유제품의 과다 섭취를 조장하는 데 사용될 것을 우려한다”며 “이는 최적의 건강한 식단이나 건강한 지구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학교 급식 변화에는 시간 필요

새 지침은 전국 3000만명의 학생들이 먹는 학교 급식에도 적용된다. 학교 급식은 연방 영양 기준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학교영양협회는 이에 앞서 우려를 표명했다. 협회는 지난 6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학교에서 초가공식품을 줄이는 새 규정은 급식 프로그램이 영양가 높은 조리 식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는 모든 메뉴를 직접 조리할 설비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협회에 따르면 학교 급식 프로그램 책임자의 79%가 초가공식품 의존도를 줄이고 직접 조리를 늘리기 위한 추가 예산이 “극도로 필요하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93% 이상이 더 많은 직원, 조리 교육, 장비,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농무부는 새 지침을 학교 조식과 중식 기준으로 전환한 뒤 학교들에 시행 시간을 줘야 한다. 학교 급식 변화에는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케네디 장관은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인들에게 건강한 식품을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며 “가공식품으로 만든 저렴한 식사가 싸다는 생각은 환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뇨병, 비만, 질병으로 나중에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행정부가 전면 개편해 2026년 1월 7일(현지시간) 발표한 미국인 식생활 지침 식품 피라미드 (미국 정부 공식 웹사이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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