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다른 국가들을 ‘미국 제국’(US empire)의 일부처럼 취급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처럼 콜롬비아에도 무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구스타보 페트로 콜롬비아 대통령. (사진=AFP)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이후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에게 “콜롬비아도 매우 병든 나라다. 코카인을 제조해 미국에 파는 것을 좋아하는 병든 남자(페트로 대통령)가 통치하고 있는데, 그는 그렇게 오래 (집권)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취재진이 ‘향후 콜롬비아에서도 군사작전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인가’라고 질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좋은 생각인 것 같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에도 페트로 대통령을 향해 반복적으로 “조심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고, 페트로 대통령은 이를 강하게 비난했다.
페트로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미군의 베네수엘라 선박 공습과 관련해서도 “살인 행위”라고 규탄한 바 있다. 당시 그는 BBC에 “단순히 마약 밀수에 연루됐다면 체포하면 된다. 그러면 사망자가 없어야 한다”며 굳이 공습해 희생자를 낸 것은 살인이라고 비난했다.
이처럼 두 지도자는 팽팽하게 각을 세우는 상황에서 지난 7일 저녁 전화통화를 가졌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돌연 곧 백악관에서 페트로 대통령과 만날 것이라고 알리며 그와 대화를 나눈 것은 “큰 영광이었다(Great Honour)”고 추켜세웠다.
페트로 대통령 역시 엑스(X·옛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 사실을 전하며 “트럼프가 내 의견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문제를 두고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내가 말했을 때) 트럼프는 친절하게 답변했다”고 적었다.
양측의 외교적 수사가 180도 뒤집힌 것이어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페트로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군사작전을 목격한 뒤 다급해졌다”고 평가했다.
◇“ICE, 나치 여단처럼 행동…美시민까지 사살”
하지만 이날 인터뷰에선 페트로 대통령의 톤이나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가 크게 개선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고 BBC는 짚었다. 실례로 그는 “미국 이민세관단속청(ICE) 요원들은 마치 나치 여단처럼 행동한다. 거리에서 라틴아메리카인들만 괴롭히는 단계를 넘어, 미국 시민까지 죽이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비난했다.
페트로 대통령은 이어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세계를 지배하는 미국이 아닌, 세계와 고립된 미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은 지난 수십년 동안, 특히 라틴아메리카에서 다른 정부들을 법과 상관없이 ‘제국’처럼 다뤄왔다”고 경고했다.
페트로 대통령은 또 베네수엘라 군사작전과 관련해 “미국이 석유와 석탄을 놓고 전쟁을 벌이려 한다.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에서 탈퇴하지 않았다면 전쟁이 없었을 것이고, 세계 및 라틴아메리카와도 훨씬 더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두로 대통령 체포는 석유 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란 얘기다.
콜롬비아는 세계 최대 코카인 생산국이자 글로벌 마약거래 주요 거점으로 악명이 높지만, 베네수엘라와 마찬가지로 석유 매장량 또한 풍부하다. 금, 은, 에메랄드, 백금, 석탄 등도 많이 산출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판매를 무기한 통제하겠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이에 따라 페트로 대통령은 콜롬비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행동 관련 발언은 “실질적인 위협”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20세기에 콜롬비아가 파나마와 같은 영토를 상실한 역사적 경험을 언급하며 “이 위협을 제거할 가능성은 (현재) 진행 중인 대화에 달려 있다”고 토로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는 한 시간 남짓 지속됐으며 대부분 내가 얘기했다. 콜롬비아의 마약 밀매 문제와 베네수엘라에 대한 콜롬비아의 입장, 미국과 관련해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페트로 대통령은 전날 NYT와의 인터뷰에서도 “우리는 위험에 처해 있다. 트럼프가 만든 위협은 실재한다”며 미국이 콜롬비아도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를 쏟아냈다.
페트로 대통령은 또 미국이 실제로 공격할 경우 콜롬비아가 어떻게 방어할 것인지 묻는 질문에 “대화가 성사되길 바란다”면서도 “콜롬비아의 역사는 대규모 군대에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갖고 있지 않은 무기로 대규모 군대에 맞서겠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방공 방어시스템도 없다. 대신 우리는 항상 그래왔듯 사람들, 산맥, 정글에 의존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베네수엘라가 “오랫동안 여러 정보기관의 개입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러한 기관들이 콜롬비아에서도 활동할 권한을 갖고 있지만 “그것은 마약 밀매 퇴치만을 위한 것이”라며 다른 비밀공작 시도를 비난했다.
◇“마약 밀매 관여” 트럼프 주장에 강력 반발
페트로 대통령은 자신이 마약 밀매에 관여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선 “내가 그 문제와 관련이 없다는 것은 항상 증명돼 왔다”고 일축했다. 그는 “나는 20년 동안 마약 카르텔에 맞서 싸워왔다. 가족들이 망명을 가야 할 정도로 대가를 치렀다”고 덧붙였다.
BBC는 전직 게릴라 출신인 페트로 대통령이 취임 후 무장단체와 대화를 우선시하는 ‘전체 평화’(total peace) 전략을 추진해왔다고 짚었다. 비평가들은 이 접근 방식이 너무 관대해 코카인 생산이 기록적인 수준에 도달했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페트로 대통령은 코카인 재배 증가세는 둔화하고 있다며 “대화는 폭력을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바보가 아니고 누구와 협상하고 있는지 안다”고 반박했다.
그는 두 가지 동시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면서 “하나는 악당인 집단과의 평화 협상이고, 다른 하나는 평화를 원하지 않는 세력에 대한 군사작전”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코카인 재배가 가장 크게 줄어든 남부에서 협상이 진행 중이다. 살인 범죄율이 가장 많이 하락한 지역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