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중의원(하원) 본회의에 참석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사진=AFP)
일본 국채는 오랜 기간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값싼 자금 조달처이자 글로벌 혼란 시 안정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블룸버그는 “지난주 엔화의 극심한 변동을 동반한 국채 매도세는 그런 시대가 끝났음을 분명히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일본은행(BOJ)의 수익률곡선통제(YCC)의 핵심 축이었던 10년물 금리가 급등하면서 일본 금융 시스템의 기준 금리 축 자체가 구조적으로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 국채 급등 배경엔 일본의 인플레이션 고착화, 다카이치 총리의 재정 부양책 추진 등이 있다. 외국인 투자자 비중 확대와 낮은 장기물 유동성, 일본은행(BOJ)의 국채 매입 축소로 과거와 달리 수익률 급등을 흡수할 완충장치가 약화된 점 등 구조적 변화도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현재 일본 국채 월간 현물 거래의 약 65%를 차지하며, 2009년의 12%에서 크게 확대됐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이는 글로벌 국채 시장까지 뒤흔들고 있다. 예컨대 최근 일본 장기채 금리 급등은 미국 국채 가격까지 끌어내렸다. 골드만삭스 분석에 따르면 일본 국채 금리가 10bp(1bp=0.01%포인트) 급등할 때마다 미국 등 다른 국가의 금리에 약 2~3bp의 상승 압력을 가한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또한 일본 금리가 어느 수준에 도달하면 값싼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 전략은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 2024년 8월 엔 캐리 트레이드의 대규모 청산으로 글로벌 증시가 출렁이기도 했다. 미즈호증권에 따르면 엔화는 약 4500억달러(약 652조 5000억원) 규모의 캐리 트레이드를 뒷받침하고 있다.
일부 투자자들은 현재 상황을 2022년 영국 리즈 트러스 총리 시절의 채권시장 위기와 비교하고 있다. 트러스 내각이 당시 대규모 감세 중심의 예산안을 내놓자 이후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고 국채 금리가 급등했다. 결국 트러스 총리는 부자 감세안을 철회하기로 했지만 그는 영국 역사상 최단기(49일) 총리로 남았다.
뉴버거버먼의 우고 란초니는 “한때 거의 움직이지 않던 일본 시장이 이제는 놀라운 수준의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며 “결국 균형 금리를 찾겠지만,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않았다. 통화 약세와 장기물 금리 통제 불능이 겹치는 ‘트러스 모먼트’라고 부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T.로우 프라이스의 아리프 후세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일본의 금리 상승을 금융 시장의 ‘산안드레아스 단층선’에 비유했다. 그는 작은 진동 하나하나가 언제 대지진이 올지에 대한 긴장감을 키운다면서 BOJ가 2024년 3월 마이너스 금리를 끝낸 이후 7조 3000억달러(약 1경 585조원) 규모의 일본 채권 시장에서 매도세가 점점 더 거칠고 잦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일본 장기 금리의 지표가 되는 10년물 금리는 최근 27년여 만에 최고치인 2.35%까지 상승했으며, 40년물 금리도 사상 처음으로 4%대로 치솟았다. 이는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이 정책 추진력을 강화하고자 중의원(하원) 해산이란 승부수를 띄웠고, 여야에서 모두 재정 확대 정책을 제시하자 재정 악화 우려가 부각된 영향이다. 다카이치 내각의 지출 확대 기조가 유권자들에게 인기가 높은 만큼 정부가 쉽게 시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이러한 변동성 장세는 23일까지 이어졌고,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는 시장 안정을 위해 국채를 매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장기물 채권 반등을 유도했지만 동시에 엔화 가치 급락을 초래했다.
엔화 가치는 이후 다시 방향을 바꿔 반등했는데, 도쿄 금융가에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 가능성이 퍼지면서였다. 이후 뉴욕 연방준비은행이 금융기관들에 엔화 환율에 대해 문의한 사실(레이트 체크)이 알려졌는데, 이는 미·일 양국 당국이 개입을 준비하고 있을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일본 금융 시장의 불안이 미국 시장에도 위협이 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우려를 보여주여준 셈이기도 하다.
피너클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의 앤서니 도일 CIO는 “엔화가 크게 하락하면 일본은 이를 방어해야 하고, 가장 빠른 수단은 미 국채를 포함한 외환보유액 매각”이라며 “이것이 바로 일본 문제가 최악의 시점에 미국 금리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로”라고 짚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