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만기 채권' 꺼낸 알파벳…AI '장기투자전’ 신호탄

해외

이데일리,

2026년 2월 10일, 오후 07:23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구글 모회사 알파벳이 IT 기업으로는 이례적으로 100년 만기 회사채 발행에 나선다. 인공지능(AI) 투자 확대를 둘러싼 수익성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알파벳은 초장기 채권이라는 선택을 통해 AI 투자를 단기 사이클이 아닌 장기 인프라 경쟁으로 끌고 가겠다는 행보로 해석된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닷컴버블 이후 IT기업으로 처음…장기인프라 경쟁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알파벳은 이번 주 첫 파운드화 표시 회사채를 발행하면서 100년 만기 채권(센추리 본드)을 포함할 계획이다. 기술기업이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하는 것은 1990년대 닷컴버블 이후 사실상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알파벳은 동시에 이날 200억 달러 규모의 달러채를 발행했으며 스위스프랑 채권 발행도 병행 준비 중이다. 달러채는 투자 수요가 몰리면서 발행 규모가 애초 계획(150억 달러)보다 크게 늘었다. AI 인프라 투자 경쟁이 본격화하면서 빅테크의 자금 조달은 ‘단발성’이 아닌 ‘상시 체제’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알파벳의 장기 부채는 2025년 말 기준 465억 달러로 급증했지만 동시에 1200억 달러가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시장에선 이번 100년물 채권을 자금 부족의 신호라기보다 장기 인프라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전략적 선택으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 100년 만기 채권은 기업 차입 가운데서도 극히 드문 형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 환경에서 일부 국가와 공공기관이 발행한 사례는 있지만 기술기업에서는 거의 금기 영역에 가까웠다. 파운드화 기준으로 100년물 채권을 발행한 사례는 옥스퍼드대, EDF, 웰컴 트러스트 정도에 불과하다. IT 업계에서는 IBM이 1996년 발행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물론 과거 100년물 채권의 성과가 반드시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초 장기 금리가 하락하던 시기에 코카콜라, 월트디즈니, IBM 등 미국 우량 기업은 금리를 장기간 고정하기 위해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했다. 그러나 이후 금리가 추가로 하락하면서 결과적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 비용을 장기간 부담해야 했다. 소매업체 J.C. 페니는 100년 만기 채권을 발행한 지 23년 만인 2020년 파산을 신청하기도 했다. IT업종처럼 산업이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에선 초장기 채권은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이런 전례에도 시장에서는 이번 알파벳의 선택을 AI 투자 환경의 구조적 변화를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한다. 막대한 AI 투자 자금을 감당하기 위해 투자자 기반을 의도적으로 분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달러 시장에 반복적으로 대규모 물량을 내놓으면 수급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파운드화와 스위스프랑 시장까지 활용해 조달 창구를 넓히는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파운드화 시장에서는 달러 대비 금리가 낮아 100년물 발행이 상대적으로 비용 효율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니컬러스 엘프너 브레킨리지 캐피털 어드바이저스 공동 리서치 총괄은 파이낸셜타임스(FT)에 “기술기업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이지만 장기 자산을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생명보험사나 연기금에는 충분히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며 “AI 투자가 단기 경기 사이클이 아니라 수십 년 단위의 인프라 경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AI투자·재무구조 점점 복잡해져…신중론도

반면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신중론도 공존한다. AI 투자에 따른 설비투자(capex) 부담이 급격히 커지는 상황에서, 일부 기관투자가는 빅테크 익스포저 확대에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임팩스 자산운용의 토니 트르진카 미국 담당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번 알파벳의 달러채 발행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수익률이 충분하지 않았고 AI 투자와 연계된 재무 구조가 점점 복잡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초대형 기술기업과 이들의 설비투자 규모에 대한 노출을 매우 보수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우려에도 알파벳의 베팅은 명확하다. 알파벳은 지난해 연간 매출이 처음으로 4000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올해 설비투자에 최대 1850억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이는 지난해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한다. AI 비서 ‘제미나이’ 수요 급증을 기회로 판단하고, 단기 수익성 논란보다 장기 패권 경쟁에 무게를 둔 셈이다.

알파벳뿐 아니라 다른 기술기업들도 회사채 발행을 늘리며 자금 조달에 나서고 있다. 오라클은 최근 250억 달러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했는데, 이 채권에는 투자자들이 총 1250억 달러가 넘는 주문을 제출하는 등 기록적인 수요가 몰렸다. 시장에서는 알파벳·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메타 등 주요 빅테크와 이들과 연결된 반도체·서버·데이터센터 공급망 전반이 올해 AI 인프라 구축에 약 6600억~7000억 달러 수준의 자본을 투입할 것으로 보고 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