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 (사진=AFP)
낙폭의 중심에는 대형 기술주와 소프트웨어 업종이 있었다. 최근 실적이 크게 나쁘지 않았던 종목들까지 동반 약세를 보이면서, 개별 기업 이슈를 넘어 기술 섹터 전반의 밸류에이션과 성장 기대를 재점검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애플은 5% 이상 밀렸고 아마존과 메타도 2% 이상 떨어졌다.
특히 수익성 압박 우려가 촉매가 됐다. 시스코가 마진 전망 부진으로 12.3% 급락하자, 메모리·부품 가격 상승이 IT 하드웨어와 네트워크 장비 전반의 수익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됐다.
소프트웨어 업종 역시 최근 2주간 “인공지능(AI)이 기존 비즈니스 모델을 잠식할 수 있다”는 공포가 커지면서 매출 성장 지속 가능성과 가격 결정력에 대한 의심이 동시에 커진 상태다. 대표적인 AI 관련주인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는 4.8% 하락했고, 오라클은 2% 이상 밀리다 약보합(-0.43%)을 기록했다. 아이셰어즈 확장 테크-소프트웨어 ETF(IGV)는 2.8% 떨어지며 최근 고점 대비 약 32% 낮은 수준으로 내려왔다.
눈에 띄는 점은 금과 은의 동반 급락이다. 금 가격은 3% 이상 떨어진 온스당 4936달러에 거래되고 있고, 은 가격은 10% 가까이 급락 중이다. 통상 주식시장이 흔들리면 금이 안전자산으로 부각되지만, 이날은 오히려 귀금속이 급락했다. 주식 손실이 확대되자 일부 투자자들이 유동성이 높은 자산을 매도해 현금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레버리지 축소와 포지션 정리가 동시에 진행된 장세였다는 해석이다.
제임스 스틸 HSBC 수석 귀금속 애널리스트는 “주식시장 급락이 현금 확보를 위한 금 매도로 이어졌다”며 “춘절을 앞두고 중국의 금 수요가 약화된 점도 시장 지지력을 상당 부분 약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반면 자금은 미 국채로 유입됐다. CPI 발표를 앞두고 국채가 강세를 보이면서 10년물 금리는 하락했고, 장기물 입찰에서도 강한 수요가 확인됐다. 전날 고용지표가 예상보다 강하게 나오며 연방준비제도(Fed)의 조기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했지만, 변동성이 커지자 일단 안전자산 비중을 늘리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다만 기술주 전반이 흔들린 가운데서도 메모리 관련주는 강세를 보였다. 미국 메모리업체 마이크론은 장중 438.77달러까지 오르다 소폭 상승 마감했다. 샌디스크 주가는 5.2% 급등했다. 컴퓨터 제조업체 레노버 최고경영자가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지난 분기 메모리 가격이 40~50% 상승했고, 이번 분기에는 계약 가격이 두 배로 뛸 수 있다”며 “공급 부족은 단기 변동이 아니다”라고 밝힌 것이 촉매가 됐다.
이는 메모리 업체의 가격 결정력이 크게 강화됐다는 신호로 읽힌다. 특히 AI 서버 증설과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따라 D램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점이 업황 개선 기대를 뒷받침하고 있다. 차세대 HBM4를 둘러싼 경쟁과 관련해 마이크론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지만, 회사 측은 이미 대량 생산이 진행 중이라고 반박했다.
이 같은 흐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긍정적이다. D램·낸드 가격 상승과 제한적인 증설 기조는 전형적인 업황 상승 국면의 특징이다. 다만 HP와 델 등 PC 업체는 메모리 가격 상승에 따른 마진 압박을 받을 수 있고 가격 상승에 따라 PC수요가 줄 경우 반도체 수요 역시 줄 가능성도 있다.
시장의 다음 분수령은 1월 CPI다. 월가 컨센서스는 전년 대비 2.5% 상승으로, 12월(2.7%)보다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근원 CPI 역시 비슷한 흐름이 예상되지만, 월간 기준으로는 0.3% 상승이 전망돼 서비스 물가의 끈적임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3개월 연속 CPI가 시장 예상치를 밑돈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도 낮게 나올 경우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는 다시 힘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전날 고용지표가 견조했던 만큼, 시장은 단순한 수치보다 이번 CPI가 “7월 인하 기대를 유지시켜 줄 수 있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