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안정? 일주일치 급여 날아가”…장 보기 무서운 美

해외

이데일리,

2026년 2월 19일, 오후 02:35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인들이 물가상승률 하락에도 여전히 생활비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아직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인플레이션 충격이 곳곳에 남아있어서다. 생활비 위기는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도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사진=AFP)
◇“식료품 30%↑…“일주일 벌어 장 한 번 보면 끝”

현재 미국인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식료품 물가다.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동월대비 2.4% 상승했다. 이는 작년 5월 이후 최저치로, 전월(2.7%)은 물론 시장 예상치(2.5%)도 하회했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였던 2020년 1월 이후 식료품 물가상승률은 30%에 달한다. 같은 기간 평균 임금(주급) 상승률이 31%를 기록, 수치만 보면 물가 상승을 상쇄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필수’ 장바구니 품목들의 가격이 떨어질 조짐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고기·송아지고기(59%), 커피(50%), 밀가루(40%), 계란(36%), 닭·빵(33%), 상추·해산물(23%), 쌀·파스타·옥수수가루·우유(22%), 버터(21%), 신선 과일·채소(15%) 등 소비자들이 즐겨찾는 품목들은 여전히 높은 상승률을 유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현재는 하락했지만 지난해 급등 후 요동쳤던 계란 가격이나 여전히 높은 커피와 소고기 가격이 대표 사례다. 블룸버그는 “미 소비자들은 팬데믹 이전엔 매주 슈퍼마켓에서 비슷한 금액을 썼지만, 최근엔 장을 볼 때마다 더 많은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라며 “즐겨찾는 식품 가격이 계속 폭등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지적했다.

외식도 힘들다. 레스토랑 음식 가격 상승률은 팁을 제외하고도 35%에 달해 더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애틀랜타시의 한 레스토랑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닉 마시(40)는 “식료품값을 지불하고 나면 일주일치 급여가 거의 다 날아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불만이 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등 중간선거에도 악영향을 끼칠 조짐이 나타나자, 공화당은 부랴부랴 아르헨티나산 소고기, 브라질산 커피 등 가격이 폭등했던 일부 품목들의 관세를 인하했다.

트럼프 행정부와 백악관은 처방약과 휘발유 가격을 낮췄다며 “미 국민들에게 앞으로 더 나은 상황이 펼쳐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충격 여파를 연구해 온 닐 마호니 스탠포드대 경제학 교수는 “무역전쟁이라는 롤러코스터와 같은 상황은 유권자들에게 생활비 부담 문제를 늘 최우선 과제로 남겨두도록 했다”고 꼬집었다.

(사진=AFP)
◇6년 간 주담대 원금·대출 상환 부담 2배…월세도 36%↑

‘먹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주거비 부담 역시 커지고 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젊은 부부가 평균적인 주택 계약금을 마련하려면 연간 가계소득의 70%가 필요하다. 이는 2000년 45%, 2019년 58%에서 크게 오른 수치다.

설령 돈을 마련해도 월별 지출이 급증했다. 전미부동산중개인협회(NAR)에 따르면 주택담보대출 평균 원금과 이자 상환액은 팬데믹이었던 2020년 초 이후 두 배(99%)로 늘었다.

IT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는 테일러 베이커(33)는 2019년 괜찮은 조건으로 ‘내집 마련’에 성공했지만, 세 자녀와 넷째를 임신한 아내를 위해 더 큰 집을 찾고 있다. 그는 “월 부담액이 2~3배 오를 것으로 보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주인뿐 아니다. 미 온라인 부동산중개 플랫폼 질로우그룹에 따르면 월세는 2020년 1월과 비교해 36% 뛰었다.

블룸버그는 “주택 소유는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생활비 부담 완화’ 공약의 핵심”이라며 “그는 이를 위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더 빠른 금리인하를 압박했다. 또 정부 지원 주택금융기관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에 2000억달러 규모 주택담보대출 증권(MBS) 매입을 지시하고, 기관투자자들의 주택 시장 참여를 제한했다”고 설명했다.

◇가전제품부터 공과금 등까지 일상 경비도 껑충

일상적인 경비 부담도 확대했다. 실내 식물(32%), 가구(19%), 가전제품(8%) 등 인테리어 제품부터 영화·콘서트 티켓(28%), 스트리밍·케이블TV(24%)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가격이 상승했다.

가스(56%), 전기(41%), 주택보험(14%) 등 각종 공과금도 크게 뛰었다. 최근엔 전력소비가 막대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가동으로 요금 부담이 심화하고 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주요 품목 중에선 TV가 유일하게 31% 하락했다. 인터넷(11%), 의류(8%) 등 일부 품목 역시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수치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미국인들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자동차를 신용대출로 구매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자동차 대출금 상환이 60일 이상 연체된 비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몇 년간 차량 압류 건수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집계됐다.

블룸버그는 “팬데믹 이후 신차(21%)와 중고차·트럭(30%) 가격이 모두 급등했고, 최근에는 자동차 보험료(56%)와 유지비(수리비 63%)까지 치솟았다. 그나마 작년 말 휘발유 가격이 하락해 숨통이 트였다”고 전했다. 다만 휘발유 가격 역시 2020년 1월과 비교하면 여전히 16% 높은 가격이다.

(사진=AFP)
◇의료비·등록금도 걱정…10명중 7명 “보육비 감당 힘들어”

의료비 부담이 급증한 것도 문제다. 정책 연구기관인 카이저가족재단(KFF)에 따르면 미국인의 3분의 2가 의료비 부담을 걱정하고 있다. 가족 건강 보험료는 지난 5년간 23% 상승해 평균 6900달러(약 1000만원)로 집계됐다.

또 미 의회가 팬데믹 시기에 제공됐던 의료보조금 지급을 종료하며 오바마케어(ACA)에 의존하는 2000만명 이상이 보험료 인상에 직면했다. 단독 가입 근로자(16%), 가족 가입 근로자(23%), ACA 월 보험료(35%) 등 일제히 부담이 커졌다.

이외에도 대학 등록금이 계속해서 오르고 있으며, 학자금 대출 연체율도 기록적인 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의 보육비는 2019년 이후 39% 급증했다. 지난해 설문조사에서 미국인 10명 중 7명이 자녀 양육비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지난 6년 간 평균 주급도 31% 인상됐으나 물가 상승을 반영한 실질 인상률은 3.7%에 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 감세안이 세금 환급액을 늘려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조세재단은 “관세 인상으로 중산층 가구의 세금 환급액 증가분이 70~95% 상쇄될 것”이라며 “저소득층 납세자들은 오히려 손해를 볼 것”이라고 지적했다.

블룸버그는 “미국인들이 가장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식료품, 공과금, 주택 가격 등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활비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는 사람들은 더욱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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