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때리려면 유럽 땅 필요한데…동맹 외면했던 트럼프 ‘부메랑’

해외

이데일리,

2026년 3월 06일, 오전 11:20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미국이 이란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개시했지만, 정작 작전 수행에 필수적인 유럽의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기지·영공·항구 없이는 중동에서 군사력을 제대로 펼칠 수 없는 구조인데, 동맹국들과의 신뢰를 스스로 갉아먹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이란 작전, 왜 유럽 땅이 필요한가

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군이 중동에 군사력을 투사하려면 유럽의 지리적 인프라가 반드시 필요하다. 독일 람슈타인 기지는 병력과 장비의 핵심 병참 허브다. 영국 RAF 페어퍼드와 스페인 로타·모론 기지는 항공기·연료·탄약을 전장으로 이동시키는 거점이다. 유럽 각국의 영공 통과 허가 없이는 항공기 이동 자체가 막힌다. 장기전으로 갈수록 이 기지들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굳어진 구조다. 미국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때도 람슈타인과 영국령 디에고 가르시아를 통해 병력을 이동시켰다.

전 유럽 주둔 미 육군 사령관 벤 호지스 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물류 수석 멘토는 “노스캐롤라이나 포트 브래그나 텍사스 포트 후드에서 미국을 지킬 수 없다”며 “우리는 이 기지들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압박에도…영국·스페인 “못 돕겠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의 협력을 얻으려 압박에 나섰지만 역효과가 났다. 영국과 스페인이 이란에 대한 공격적 군사 작전 지원을 거부하자, 트럼프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를 “윈스턴 처칠과는 거리가 멀다”며 조롱했다. 스페인에는 무역 단절을 위협했다. 두 지도자 모두 물러서지 않았다.

스타머 총리는 “어떤 행동도 법적 근거와 실행 가능하고 충분히 검토된 계획을 갖춰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레이첼 리브스 영국 재무장관은 블룸버그에 “무역 협정 가능성을 위해 분쟁에 영국군 참전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며 “이란에 대한 공격적 행동에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도 굽히지 않았다. 그는 TV 연설에서 이라크 전쟁을 전례로 들며 “하나의 불법 행위를 또 다른 불법 행위로 답할 수 없다. 그것이 인류의 대재앙이 시작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국제법 밖에서 수행되는 공습에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이 전쟁이 국제법의 위기를 반영한다고 경고했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도 같은 견해를 밝혔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이란과 친이란 세력이 중동 전역에서 보복 공격에 나선 상황을 정리한 지도. 이란 나탄즈 지하 핵시설 타격, 리야드 주재 미국 대사관 드론 공격, 카타르 라스라판 에너지 시설 공격 등이 표시돼 있다. 주황색은 보고된 폭발, 노란색은 미국·이스라엘의 공습, 빨간색은 이란 및 친이란 세력의 대응을 의미한다. (자료: 전쟁연구소(ISW)·AEI 중대위협프로젝트)
◇“동맹 외면한 대가”…쌓인 불신이 부메랑으로

유럽이 이처럼 소극적인 데는 트럼프 스스로가 만든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 이후 그린란드를 놓고 유럽과 마찰을 일으켰고, 관세 위협을 반복했으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영국의 기여를 공개적으로 비하했다. 이번 이란 작전을 시작할 때도 유럽 각국과 거의 협의하지 않았다.

독일마셜펀드 이언 레서 석학은 “미국은 동맹과 연대하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며 “이 분쟁이 어디로 향할지 미국도 모른다”고 말했다. 찰스 그랜트 유럽개혁센터 소장은 블룸버그에 “유럽이 트럼프에게 ‘예스’라고 말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그린란드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위협도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 영국 관리들은 초기엔 트럼프와의 공개적 마찰을 최대한 피하려 했지만, 이제는 공개적으로 비판을 받더라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양국 관계의 핵심은 물밑에서 유지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랜트 소장은 “트럼프는 양보를 받아내고 다음으로 넘어간다”고 했다. 관세, 그린란드, 러시아 양보, 이란 공습으로 이어지는 패턴 속에 매번 더 높은 판돈이 걸린다는 것이다.

◇완전한 결별은 어려워…유럽도 끌려 들어가

그렇다고 유럽이 미국과 완전히 결별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유럽은 이미 이 전쟁에 발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사이프러스의 영국 기지가 드론 공격을 받자, 프랑스·영국·그리스는 즉각 이 소국 방어에 나섰다. NATO 배치 차원에서 터키에 주둔 중인 스페인 미사일 포대는 격추된 미사일을 탐지하기도 했다. 이탈리아는 걸프 국가들의 요청 시 방공망을 포함한 방어적 지원을 보낼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마르크 뤼터 NATO 사무총장은 “이란이 유럽에도 위협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결국 유럽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전쟁에 점점 깊이 끌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유럽 국가들은 직접 참전하지 않더라도 전쟁이 장기화되면 물류·외교·후폭풍 면에서 유럽의 역할이 불가피하게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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