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에 웃는 러…트럼프 제재 뚫고 쿠바에 유류 밀반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3월 19일, 오전 09:52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제재를 피해 쿠바에 유류를 밀반출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중동 전쟁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되는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원유 판매 기회를 모색한 결과로, 사실상 미국의 제재를 무시한 처사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1월 26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시위 현장에 등장한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형 풍선 인형. (사진=AFP)
친(親)트럼프 성향의 폭스뉴스는 18일(현지시간) 해상정보 분석업체 윈드워드AI(Windward AI)를 인용해 “러시아가 미국의 대(對)쿠바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선박 위치 신호를 조작하는 ‘스푸핑’(spoofing) 전술을 사용해 쿠바로 석유를 비밀리에 운송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보도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 1월 29일 이후 사실상 ‘대쿠바 석유 해상봉쇄’ 조치를 시행 중이다. 이 조치는 베네수엘라의 정치 변화와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 체포 이후 발효됐으며, 쿠바로 향하는 연료 공급을 추가로 차단했다. 이에 따라 쿠바는 연료 부족과 대규모 정전 사태 등 심각한 에너지 위기를 겪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쿠바에 석유를 공급하는 국가에는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으나, 쿠바의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이를 “경제전쟁”으로 규정하고 “미국의 압박에 저항을 계속하겠다”며 반발했다.

러시아는 이러한 틈새를 파고들었다. 가장 최근 밀반출 사례는 지난 16일 전력망 붕괴 직전에 보고됐다. 쿠바 정부와 쿠바 주재 미국 대사관에 따르면 약 1000만명이 정전 피해를 입었다.

윈드워드AI는 홍콩 국적 유조선 ‘시호스’(Sea Horse)호(號)가 러시아산 원유 밀반출의 핵심이라고 지목했다. 회사는 “해당 선박은 미국의 제재 대상이 아니지만, 자동식별장치(AIS) 기록을 보면 위치를 조작한 뒤 3월 초 쿠바에 입항해 화물을 하역한 것으로 보인다”며 “약 19만~20만배럴의 석유를 쿠바로 운송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윈드워드AI에 따르면 시호스호는 키프로스 인근 해역에서 선박 간 환적(ship-to-ship transfer)을 수행하며 자동식별장치를 꺼두는 등 제재 회피에 해당하는 여러 의심스러운 행동이 포착됐다. 항해 중 서방 보험 없이 운항했으며, 목적지를 ‘하바나’에서 ‘지브롤터’(명령 대기 중)로 여러 차례 변경해 실제 도착지를 숨겼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서양 횡단 후 시호스호는 ‘통제 불능’(not under command) 상태라고 방송 신호를 송출하며 표류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으나, 분석가들은 실제 AIS 신호가 조작돼 실제 위치와 활동을 감춘 것으로 보고 있다. 윈드워드AI는 이러한 정황들을 근거로 “선박이 쿠바에 비공식적으로 석유를 하역한 뒤 정상 항로로 복귀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아울러 파이낸셜타임스(FT)는 러시아 국적 유조선 ‘아나톨리 콜로드킨’(Anatoly Kolodkin)이 원유를 싣고 쿠바로 향하고 있으며, 오는 4월 4일께 도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드미트리 페스코프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는 쿠바에 가능한 모든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기자들에게 “쿠바는 지금 매우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마르코(루비오 상원의원)와 논의 중이며, 곧 쿠바와 관련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는 폭스뉴스에 “현행법상 쿠바 기업과 개인이 합법적으로 석유를 구매할 방법이 있지만, 현 정권이 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며 “쿠바의 에너지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경제 실패의 근본 원인, 즉 전면적인 국가 통제를 바로잡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쿠바 석유금수 조치는 쿠바 정부의 구매를 제한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민영화와 개인 자율성을 허용하지 않는 한 사태는 개선되지 않는다”고 부연했다.

한편 러시아의 도발적인 행보는 미국·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이란과 전쟁을 지속하는 가운데 진행돼 더욱 주목을 끌고 있다. 러시아는 이번 전쟁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이란 전망이 잇따르고 있다.

실례로 최대 구매자였던 인도는 이달 초 미국으로부터 30일간의 유예(waiver)를 받아 러시아산 원유를 제한적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됐다. 중동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유예 기간 역시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일부 외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준 선물”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아울러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은 유럽 국가들이 호르무즈 해협 보호를 위해 군함 등을 파견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력 요청을 거부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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