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증권거래소 (사진=AFP)
◇트럼프 “공격 5일 유예”…유가 14% 급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가 뉴욕 금융시장을 순식간에 뒤집었다. 이란 에너지 시설 공격을 유예하고 협상 가능성을 시사하자, 유가는 폭락하고 증시는 급등하는 ‘5분짜리 랠리’가 펼쳐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과 이란이 매우 생산적인 대화를 진행했다”며 “적대행위를 완전히 끝낼 수 있는 협상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이란의 발전소와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군사 공격을 5일간 유예하도록 지시했다”며 사실상 군사 옵션에서 한 발 물러선 모습을 보였다. 이어 “양측 모두 합의를 원하고 있으며 매우 기꺼이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능한 한 많은 원유가 시장에 공급되길 원한다”며 “합의가 이뤄지면 유가는 급락할 것”이라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 유가 안정이 정책 판단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하지 않을 경우 48시간 내 공격을 경고한 상태였다. 시장은 이를 사실상 ‘군사 옵션 후퇴’로 해석하며 즉각 반응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테네시주 멤피스 공군 주방위군 기지에 도착해 에어포스원에서 내리고 있다. (사진=AFP)
이후 상승폭은 빠르게 축소됐다. 특히 이란이 “미국과 협상은 없었다”며 즉각 반박하면서 시장의 기대는 흔들렸다. 미국의 주요 협상 창구로 거론되고 있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은 “미국과 어떠한 협상도 진행된 바 없다”며 “가짜 뉴스가 금융시장과 유가를 조작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빠진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 인식이 다시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장중 한때 14% 넘게 떨어졌던 브렌트유는 낙폭을 일부 줄였지만 결국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내려왔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물은 전 거래일 대비 10% 이상 하락한 88.13달러를, 국제 기준유인 브렌트유 5월물 역시 11% 넘게 빠지면서 99.71달러까지 내려왔다.
브렌트 유가 추이 (그래픽=CNBC)
유가 급락은 금융시장 전반의 가격 재조정으로 이어졌다. 국채 금리와 달러화는 하락했다. 글로벌 국채 벤치마크 역할을 하는 10년물 국채금리는 4.2bp(1bp=0.01%포인트) 빠진 4.35%를, 연준 정책에 민감하게 연동하는 2년물 국채금리도 4.2bp 떨어진 3.852%에서 움직이고 있다. 달러화는 주요 통화 대비 약세를 보였다. 유로 대비 약 0.7%, 엔화 대비 0.6% 하락했으며 달러인덱스 역시 0.6%가량 떨어졌다.
최근 유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로 강화됐던 금리 인상 베팅은 크게 줄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페드워치 기준 12월 금리 인상 확률은 전일 25%에서 약 14% 수준으로 낮아졌다. 연내 소폭 금리 인하 가능성도 다시 가격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는 시장이 그동안 우려했던 ‘유가 상승→기대 인플레이션 상승→금리 상승→자산가격 하락’의 악순환 고리가 일시적으로 끊겼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지정학 리스크 완화 신호가 나오자 숏커버링(주식을 되사서 공매도 포지션 정리)이 유입되며 상승폭이 확대된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이 ‘반등할 준비가 된 상태’에서 촉매가 제공됐다는 해석이다.
◇“협상인가 시간벌기인가”…시장 여전히 의심
월가에서는 이번 장세가 과거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레이드와 닮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가 시장 충격이 커질 때마다 정책을 되돌린다는 학습효과다. 실제로 유가가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에 확산된 상황이었다.
RBC 웰스매니지먼트의 톰 개럿슨은 “결국 트럼프의 입장 변화는 채권시장이 만들어낸 것일 수 있다”며 “유가와 금리 상승이 정책 방향을 바꾼 셈”이라고 분석했다.
크리슈나 구하 에버코어 ISI 부회장은 “이번 조치가 실제 전쟁 출구 전략의 신호인지, 아니면 유가 급등을 막기 위한 전술적 시간벌기인지는 불확실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이번 변화는 최소한 금리 측면에서 단기적인 완화 효과를 줄 수 있다”며 시장에 일시적 숨통을 틔워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크리스 라킨 모건스탠리 전략가는 “시장은 잠재적 호재에 반응했지만 실제 긴장 완화가 확인돼야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여전히 뉴스 흐름에 좌우되는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브록 와이머 에드워드존스 전략가는 “진정한 긴장 완화 여부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이 정상화되는지에 달려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이 이제 ‘트럼프의 말’ 자체를 신뢰하지 않기 시작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최근 잇따른 발언 번복과 과장된 메시지가 투자자들의 판단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즈호은행의 조던 로체스터 전략가는 “지금 시장에서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전쟁이 아니라 백악관의 메시지”라며 “종전 신호인지, 또 다른 과장 발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파이퍼샌들러의 마이클 캔트로위츠 수석 전략가는 “트럼프의 반복되는 입장 변화는 시장 하락을 막는 동시에 불확실성을 키운다”며 “결국 시장의 방향성보다는 변동성만 키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래픽=Finviz)
종목별로는 전형적인 ‘리스크 온’ 흐름이 나타났다. JP모건체이스(1.2%), 모건스탠리(1.8%) 등 금융주가 반등했고, 델타항공(2.7%), 유나이티드항공(4.5%) 등 항공주는 유가 하락에 힘입어 급등했다. 노르웨이지안 크루즈라인(6.2%), 카니발(5.5%), 바이킹 홀딩스(5.7%) 등 크루즈 업종도 강세를 보였다.
경기 회복 기대가 살아나면서 캐터필러(3.1%), 디어(1.7%) 등 산업주도 상승했고, 엔비디아(1.6%), 애플(1.4%) 등 대형 기술주도 동반 반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