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시장이 크게 흔들리자 다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타코(TACO·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나 꽁무니를 뺀다)가 다시 등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란 정부의 요청에 따라 에너지 시설 파괴를 10일간 중단하고, 시점을 6일 오후 8시(미 동부시간)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협상이 진행 중이며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매우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 이후 장마감 이후 증시가 일부 반등하고, 채권금리의 상승폭이 일부 줄어들긴 했지만 불확실성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개장 직후 한 트레이더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사진=AFP)
26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74% 내린 6477.15로 마감했다. 나스닥 지수는 2.38% 떨어진 2만1408.08을,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도 1.01% 하락한 4만5959.43을 기록했다.
특히 나스닥지수는 지난해 10월 고점 대비 10% 이상 하락하며 기술적 ‘조정 국면’ 진입이 가시화됐다. 최근 반등 흐름을 보였던 증시는 이날 낙폭을 키우며 전일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했다.
유가 급등이 또 다시 투심을 끌어내렸다. 유가가 다시 치솟자 이는 곧바로 인플레이션 재자극 우려로 이어졌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5월물은 전 거래일 대비 4.61% 상승한 배럴당 94.48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 5월물 역시 5% 급등한 10달러 선까지 올랐다.
이에 따라 미 국채 금리는 급등했다. 국채 입찰 부진까지 겹치며 채권 가격 하락이 심화됐다. 미 재무부는 이날 440억달러 규모 7년물 국채 입찰을 실시했지만 수요가 기대에 못 미치며 부진한 결과를 보였다. 2년물 금리는 약 3.9%, 10년물은 4.42% 수준까지 올라 각각 지난해 6월과 7월 이후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비트코인과 금까지 동반 하락하며 시장 전반에서 위험 회피 심리가 확산됐다. 전형적인 ‘공급 충격형 리스크오프’가 재현된 셈이다.
월가에서는 “유가 상승→인플레이션 압력→금리 상승→자산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경로가 다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는 최근 시장을 지탱하던 ‘종전 기대’가 빠르게 약화하고 있는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에 대해 협상 타결을 압박하면서도, 합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명확한 신호를 주지 않았다. 그는 “이란이 전쟁을 멈추지 않으면 계속 공격할 것”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란 역시 중재국을 통해 휴전 조건을 전달했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을 재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 등을 요구하며 강경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협상은 진행 중이지만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 교착 상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협상 기한 10일 다시 연장했지만…시장엔 의구심 퍼져
시장이 다시 공포가 퍼지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끝날 협상시한을 다시 내달 6일까지 연장했다. 당장 내일 전쟁이 격화할 최악의 상황은 면하긴 했지만, 현재 흐름으로는 단기간 내 합의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매트 말리 밀러타박 전략가는 “협상 진전은 매우 제한적이며 불확실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웰스파고의 더그 비스 글로벌 전략가는 “누가 실제 협상 상대인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라며 “상반된 신호와 ‘전쟁의 안개(fog of war)’가 시장을 움직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협상 관련 발언이 오갈 때마다 증시와 유가가 급등락하는 ‘헤드라인 장세’가 지속되고 있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미국이 이란의 핵심 에너지 인프라를 직접 타격하는 군사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주요 타격 대상으로 이란 최대 원유 수출 거점인 하르그섬을 지목하고 있다. 하르그섬은 이란 원유 수출의 약 90%를 처리하는 핵심 시설로, 사실상 이란 경제의 ‘심장부’로 평가된다.
미국이 이 지역의 저장시설과 선적 터미널, 송유관 등을 공격하거나 장악할 경우 이란의 수출 능력이 크게 훼손되면서 전쟁 양상이 한층 격화될 수 있다.
이미 미국은 중동 지역에 병력과 군함을 추가 배치하는 등 군사적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경우 에너지 시장 충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재도 호르무즈 해협 통행 차질로 원유 공급이 제한된 가운데, 핵심 수출 거점까지 타격을 받을 경우 공급 불안이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
국제유가는 배럴당 120달러 이상으로 재급등할 수 있으며,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도 심화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유가가 높은 수준에서 장기간 유지될 경우 미국 경기 침체 가능성이 50%를 웃돌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가 120달러 땐 경기침체 전환 가능성…연준 ‘딜레마’ 심화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시장의 초점은 다시 에너지 공급 충격으로 이동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이후 이란이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글로벌 원유 공급이 크게 위축됐다. 하루 수백만 배럴 규모 공급 차질이 발생하며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브렌트유는 이번 달에만 약 50% 상승할 것으로 예상될 정도로 상승 폭이 가파르다. 이는 글로벌 경제 전반에 인플레이션 압력을 재확산시키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이날 보고서를 통해 이란 전쟁으로 글로벌 경제가 기존 성장 경로에서 이탈하고 있으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가까운 상황이 인플레이션을 크게 자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넘어설 경우 미국 경제가 경기침체 국면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유가 상승이 일정 수준까지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해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압력을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유가가 현재 수준에서 유지될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금리 인상 가능성이 다시 부각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유가가 추가로 급등할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 배럴당 120달러 수준까지 오르면 휘발유 가격 상승과 운송비 증가로 소비가 위축되는 ‘수요 파괴(demand destruction)’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이 경우 경제 성장 둔화와 고용시장 악화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연준의 정책 방향도 다시 완화 쪽으로 전환될 수 있다. 즉, 초기에는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한 긴축 압력이 커지지만, 이후에는 경기 방어를 위한 금리 인하 필요성이 부각되는 구조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유가 상승이 지속될 경우 초기에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지만, 이후 소비 위축으로 물가 압력이 완화되며 경기 둔화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 전쟁이 단기간 내 종료될 경우 유가는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연준도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경제는 이미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연율 0.7%에 그쳤으며,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은 올해 1분기 성장률을 약 2% 수준으로 추정하고 있다.
◇에너지업종만 상승…구글·메타 ‘중독소송’에 급락
이날 업종별로는 에너지주만 상승하고 대부분 업종이 하락했다. 유가 급등 영향으로 에너지 업종은 1.6% 상승하며 유일하게 뚜렷한 강세를 보였다. 방어주 성격의 유틸리티 업종도 0.2% 오르며 상승 흐름에 동참했다.
반면 기술주들은 대체로 약세를 보였다. 미국 법원이 소셜미디어 중독 관련 소송에서 메타와 구글의 책임을 인정한 영향으로 메타 주가는 7.96%, 구글 모회사 알파벳은 3.1% 하락했다.
반도체주도 약세를 보였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4.8% 하락했고, 인공지능(AI) 대표주 엔비디아도 4.2% 떨어지며 다우지수 하락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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