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해이 부추기는 전세사기 최소 보장제[기자수첩]

해외

이데일리,

2026년 3월 30일, 오후 07:32

[이데일리 박지애 기자] 최근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전세사기 ‘최소보장제’ 도입 논란을 보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수준을 넘어 아예 소값의 절반을 대신 물어주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국회 정문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가 연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을 처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이 제도는 피해자가 회수한 보증금이 전체의 절반에 못 미칠 경우, 국가가 그 차액을 메워 최소 50%까지 보전해주자는 것이 골자다. 예를 들어 보증금 1억원인 전세사기 피해자가 경매 등을 통해 2000만원만 회수했다면, 보증금 절반(5000만원)에 못미치는 3000만원을 정부가 보전해 어찌됐든 절반까지는 보상을 받도록 안전망을 설치해주자는 것이다.

해당 내용이 담긴 법안은 여야 공동발의라는 외형을 갖췄지만, 실상은 쟁점 법안에 가깝다. 공동발의자 48명 중 야당 참여는 3명뿐이며, 여당 내에서도 보장 비율과 대상, 재원 문제를 둘러싼 이견은 여전한 분위기다.

물론 국민 주거권을 위해 전세사기 피해자에 대한 보호는 필요하다. 문제는 방식이다. 현재 거론되는 50% 보장은 자칫 임차인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 “어차피 절반은 국가가 보전해준다”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계약 단계에서의 최소한의 확인과 위험 인식마저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임대인 처벌 등 사기를 막는 제도적 보완이 보다 강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사후 보상에 더 무게를 두는 정책은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피해자 보호를 외면할 수는 없다. 정보 비대칭과 제도 미비 속에서 발생한 전세사기는 개인의 잘못만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다.

결국 필요한 것은 재기를 위한 ‘최소한의 보장’이다. 대항력 등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피해자에 한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수준의 지원은 분명 필요하다. 다만 그 선을 어디까지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정교한 설계가 전제돼야 한다.

지금 논의해야 할 정책적 방향은 소를 도둑맞은 뒤 얼마를 보상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소를 도둑맞지 않게 외양간을 보강할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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