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 테일러 공장 구축 현장 (사진=경계현 삼성전자 사장 인스타그램 갈무리)
31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미국 동부 뉴욕주 중부 인구 6만명의 타운 오논다가 카운티 클레이에는 지난달 말까지 도쿄돔 40개가 넘는 광활한 부지가 거의 빈 땅인 채로 마른 잡초와 눈에 덮여 있었다. 조 바이든 전 정부가 2022년 반도체·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유치한 마이크론 공장 부지로, 총 투자액이 1000억달러에 달해 완공시 최대 5만명을 고용할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공사는 올해 1월에야 겨우 시작됐고, 여전히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본거지’(Home of Micron Technilogy)라고 적힌 간판과 완성 예정도만이 듬성듬성 세워져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마이크론의 환경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1기 공사뿐 아니라 2기 이후 공사도 이미 당초 계획보다 2년 늦어질 전망이다. 카운티의 행정 책임자인 다미안 울라토프스키는 “착공이 2~3년 늦어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
마이크론은 이유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각종 환경·지질 조사 등 ‘다양한 프로세스’가 배경에 있다고 설명하지만 ‘크라우딩 아웃’(crowding out)이 핵심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먼저 착공한 데이터센터 또는 반도체 공장이 인력과 자금을 빨아들이면서 다른 사업에 대한 자원 투입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이크론 공장을 유치한 라이언 맥마흔 행정관은 지난해 11월 공사 지연 이유로 “광범위한 노동력 부족”을 꼽았다. 마이크론이 아이다호주 등 다른 지역에서 진행 중인 공장 건설에도 예상보다 시간이 걸리면서 연쇄적인 지연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공사 지연은 마이크론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만 TSMC가 애리조나주에서 지난해 가동시킨 공장도 숙련공과 전기기사 부족으로 계획보다 1년 늦어졌다. 텍사스주 삼성전자 공장 역시 인력 부족으로 양산 개시가 2년가량 지연될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이민정책이 악재로 겹쳤다. 건설 현장은 이민자 노동력에 대한 의존도가 특히 높다. 미 전역 건설현장에 노동자를 파견하는 히스패닉건설협회의 조지 카리요 회장은 “데이터센터 등에 투자가 집중된 결과 노동자 부족이 심각해지고 있다”며 “협회가 지난해 전국 415개 중견 건설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90% 이상이 인력 부족에 직면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 버지니아주 애쉬번의 데이터센터. (사진=AFP)
이처럼 인력난이 심화하는 가운데 정작 미국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건설 붐의 열기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022년 제정된 CHIPS·과학법을 계기로 인텔·마이크론 등의 공장 건설이 일제히 속도를 내면서 제조업 건설 지출은 종전 700억달러대에서 2000억달러를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급증했다. 데이터센터 건설 지출도 올해 1월 기준 3년 전의 3배 이상인 469억달러로 불었다.
문제는 인력과 자재가 ‘더 급하고, 더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AI 인프라에 집중되며 다른 건설 현장에선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전체 투자 효율을 갉아먹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경제성장을 끌어올리는 기여폭은 지난해 하반기 0.3~0.4%포인트로, 2010~2019년 평균 0.7%포인트를 밑돌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무기로 해외 자본을 대거 유치하며 대미 투자가 급증했지만, 이 역시 대부분 AI 분야에 집중 투입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밝힌 민간·해외 투자 표명액은 10조 5000억달러로 미국의 연간 설비투자액의 2배를 넘는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지난 20일 미국 오하이오주 파이크턴에서 세계 최대 규모 AI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을 공개하며 5000억달러 이상의 투자를 선언했다. 그는 “단일 투자로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라고 강조했다.
AI 인프라에대한 천문학적 투자가 현실화할수록 역설적으로 크라우딩 아웃은 심화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미 조사회사 콘트라그룹의 피터 로고프는 “AI 기업들의 투자 급증으로 공공사업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캘리포니아주 통근철도 ‘칼트레인’의 일부 역사(驛舍) 고가화 공사 예산이 당초 3억달러에서 9억달러로 세 배 부풀어 오른 것이 대표 사례다.
닛케이는 “경제의 지속성장을 뒷받침해야 할 인프라 정비에 차질이 생기면 그 피해는 경제 전체로 돌아온다”며 “AI 투자 열풍이 자원 배분의 불균형을 키우고, 결국 경기 변동과 금융 불안에 대한 경제 내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