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은 중동 긴장이 고조되기 전까지 단연 세계 최고의 성과를 보였던 한국 주식 시장이 전쟁 이후 대규모 매도세를 겪고 있는 이유에 대해 “유가 급등으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전망이 어두워졌고 동시에 메모리 칩 수요에 대한 낙관론도 식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3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실시간 환율 정보와 코스피 지수가 표시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블룸버그는 한국이 원유 수입의 70% 이상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어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충격에 매우 취약한 구조이며, 인플레이션 상승, 통화 긴축 가능성도 높아졌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요일별 자동차 운행 제한 조치 확대를 검토하는 것을 두고도 에너지 비용 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마빈 첸 전략가는 “전쟁 리스크가 아직 주가에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며 “유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수록 기업 이익 모멘텀이 추가로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또 소수의 성장주에 의존해 형성된 주가 상승세의 취약성이 드러나면서, 한국 주식 시장에 대한 낙관론이 균열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구글이 인공지능(AI) 운영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기술 ‘터보퀀트’를 공개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지속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다시 제기됐다. 이러한 점은 코스피 시가총액의 약 40%를 차지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에 부담을 주고 있다.
2016년 이후 월별 한국 증시 외국인 자금 유입·유출 규모. 이란 전쟁 이후 유가 급등과 반도체 수요 둔화 우려가 겹치면서 글로벌 자금이 한국 주식시장에서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출처=블룸버그)
시드니 기반 윌슨 자산운용의 매튜 하우프트 펀드 매니저는 “전쟁과 메모리라는 두 가지 역풍 때문에 당분간 한국 주식에는 손을 대지 않을 생각이다. 한 가지 싸움만으로도 벅찬데 두 가지를 동시에 치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더 불확실한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어, 일부 과열 현상으로 인해 코스피 거래가 위험해졌다”고 덧붙였다.
블룸버그는 한국 증시 투자자들에게 가장 큰 도전 과제로 극심한 변동성을 꼽았다. 급락에 이어 과도한 반등이 이어지는 패턴을 지적한 것이다. 8% 하락 시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코스피 서킷브레이커는 이번 달에만 두 차례 발동되었으며, 이는 2000년 이후 전체 서킷브레이커 발동 건수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한편, 코스피 선물 가격이 5% 이상 움직일 때 발동되는 10번째 사이드카는 올해 들어 이미 발동되었으며, 이는 2025년 전체 발동 건수인 3건과 대비된다.
코스피는 최근의 조정 국면에도 불구하고 올해 들어 여전히 23% 상승한 상태다. 일부 투자자들은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핵심 메모리 분야의 강세, 반도체 수출 급증, 지속적인 기업 지배구조 개혁 등을 근거로 한국 주식의 장기적인 전망에 대해 여전히 낙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중동 분쟁으로 인한 공급망 차질이 시장에 미칠 영향이 더 명확해질 때까지 관망하는 투자자들이 많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리드 캐피털 파트너스의 제럴드 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전쟁 상황이 앞으로 한두 달 정도 더 장기화된다면, 적어도 연말이나 내년 초까지는 기다렸다가 한국 주식에 다시 관심을 갖겠다”면서 “당분간은 현금을 보유하거나 금을 매수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이란 전쟁의 여파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시장과 신흥국 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31일 MSCI 신흥시장 지수는 장중 최대 0.9% 하락하며, 한때 15%를 웃돌았던 연초 이후 상승분을 모두 반납했다. MSCI 아시아 지수 역시 올해 상승분을 한때 모두 잃었다.
MSCI 아시아 지수는 연초부터 이란 전쟁 직전인 2월 27일 사상 최고치까지 약 15% 상승하며 글로벌 증시를 크게 앞질렀다. 이들 시장은 연초까지만 해도 AI 인프라 관련 주식으로 자금이 몰리며 강한 상승세를 보였다. 그러나 통화 긴축 강화 전망과 핵심 원자재 공급 차질 우려로 경제 성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상승분이 모두 사라졌다.
프랜시스 탄 CA 인도수에즈 자산운용 아시아 수석 전략가는 “시장이 리스크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으며, 지난 1년여 동안 크게 올랐던 아시아 증시가 강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또 “특히 기술주 중심의 성장주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전망이 조정되면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