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FP)
현물가격은 향후 10~30일 내 인도되는 물량에 대한 즉각적 수급을 반영한다. 선물가격과의 이 같은 극단적 괴리는 실물 시장의 공급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방증한다.
에너지 리서치업체 에너지 애스펙츠(Energy Aspects)의 암리타 센 창업자는 CNBC에 “선물가격은 상황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는 착각을 준다”며 “금융 시장이 실물 시장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진짜 공급 부족을 가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의 경유 가격이 현재 배럴당 거의 200달러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최고경영자(CEO)도 선물 가격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실질적 충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트럼프 연설 파장…“전쟁 지속 우려에 시장 충격”
트럼프 대통령이 전날 대국민 연설에서 전쟁을 몇 주 더 이어가겠다고 선언하자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선물 시장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0% 이상 급등해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했고, 브렌트유는 6% 이상 올라 107달러를 넘어섰다.
TD증권의 라이언 맥케이 시니어 원자재 전략가는 “분쟁이 적어도 4월 중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배럴 수급 계산이 점점 더 암울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달 말까지 최대 6억 배럴의 원유와 약 3억5000만 배럴의 정제 제품을 합쳐 거의 10억 배럴이 손실될 것으로 추산했다. 전쟁이 1개월 연장될 때마다 추가로 4억5000만 배럴이 사라진다.
에너지 컨설팅업체 라피단 에너지(Rapidan Energy)는 파이프라인 우회 수송, 비상 비축유 방출, 재고 소진 등을 감안하면 오는 6월 말까지 원유와 정제 제품의 순손실이 총 6억3000만 배럴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어게인 캐피탈(Again Capital)의 존 킬다프 창립 파트너는 “이번 연설은 재앙이었다”며 시장이 전쟁 지속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영향을 빠르게 가격에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랍에미리트 미나 알 파예르에서 바라본 호르무즈 해협에 유조선과 화물선이 줄지어 서 있다. (사진=뉴시스AP)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연설에서 이란이 유조선 공격으로 사실상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할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전쟁 전 전세계 원유 공급량의 약 20%가 이 해협을 통과했다.
트럼프는 오히려 해협에 의존하는 국가들을 향해 스스로 나서 원유를 지킬 책임이 있다고 주문하고, 미국산 원유를 구매할 것을 촉구했다.
라피단 에너지의 밥 맥낼리 대표는 “미군이 첫날부터 호르무즈 봉쇄 능력을 약화시키는 작전에 나서지 않은 것이 믿기지 않는다”며 “낙하산 없이 뛰어내리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셸(Shell)의 와엘 사완 CEO는 연료 부족 사태가 항공유를 시작으로 경유, 휘발유 순으로 전세계에 파급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남아시아가 먼저 타격을 받고 있으며, 이어 동남아시아, 동북아시아, 그리고 4월에 접어들면서 유럽으로 확산될 것”이라고 밝혔다.
◇재고 8월 위험…“전쟁 후에도 가격 지지”
TD증권의 맥케이는 호르무즈 봉쇄가 지속될 경우 육상 원유 재고가 이르면 오는 8월 수년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재고 완충이 줄어들수록 아시아에서 시작된 실물 공급 부족이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는 게 그의 진단이다.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의 매튜 번스타인 애널리스트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비축 수요 증가, 호르무즈 관련 보험·운임 비용 상승, 광범위한 지정학적 리스크 프리미엄으로 인해 가격은 지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의 경우 강력한 자국 생산 덕분에 공급 부족에서 대체로 보호받고 있다. 그러나 JP모건의 나타샤 카네바 글로벌 원자재 리서치 대표는 수입 의존도가 높은 캘리포니아 등 미 서부 해안 지역은 오는 5월까지 공급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연료 분석업체 개스버디(GasBuddy)는 현재 추세가 이어진다면 미국 소매 휘발유 가격이 향후 2주 내 갤런(약 3.8리터)당 최대 4.45달러, 디젤은 6.05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의 휘발유 사상 최고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인 2022년 6월의 갤런당 5.02달러였다.
개스버디의 패트릭 드한 석유 분석 대표는 사상 최고가도 멀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독립 원유 애널리스트 톰 클로자는 “경유 가격 급등이 올해 2분기에 상당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로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