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2일(현지시간) CNN방송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비공개 행사에서 프랑스가 이란에 대한 미국·이스라엘 군사 작전에 동참하지 않은 것을 질책하며 마크롱 대통령의 부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는 “마크롱에게 전화했는데, 그의 부인이 그를 아주 가혹하게 대하더라. 오른쪽 턱을 얻어맞고 아직 회복 중”이라고 조롱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에게 ‘우리가 기록을 세우고, 악당들을 제거하며 탄도 미사일을 격추하고 있지만, 그래도 도움이 필요하다. 가능하면 즉시 함선을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으나 그는 ‘전쟁이 끝난 후에야 가능하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이어 “나는 ‘전쟁이 끝난 후에는 필요 없다’고 답했다. 이번 일을 통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대해 알게 됐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앞서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 등에서 유럽 동맹국들이 군함 파견 등 자신의 협조 요청을 거절한 것을 “기억할 것”이라고 밝힌 것과 궤를 같이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비공개 행사에서 나온 것이지만 관련 영상이 백악관 공식 유튜브 채널에 짧은 시간 동안 게시되면서 세상에 공개됐다. 현재는 영상 접근이 차단된 상태다. 영상 게재가 실수였는지 의도된 것이었는지는 불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비아냥은 지난해 프랑스 대통령 전용기 안에서 브리짓 마크롱이 남편의 얼굴을 밀치는 듯한 영상을 빗댄 말이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아내와 장난을 친 것”이라고 해명했고,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 역시 “두 사람 사이의 친밀한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을 공식 방문 중인 마크롱 대통령은 기자들의 관련 질문을 받고 “트럼프의 발언은 우아하지 않았고 적절하지도 않았다”며 일침을 놨다. 그는 또 “트럼프가 나토를 매일 흔들고 있다”고 직격하며, 호르무즈 해협을 무력으로 개방하자는 구상에 대해 “비현실적”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진지하게 임하려면 전날 한 말과 정반대의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트럼프 대통령의 일관성 없는 행보를 이례적으로 강력 비판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아내이자 영부인인 브리짓은 그보다 약 25살 연상으로, 프랑스 정가에선 오래된 예민한 소재다. 두 사람은 지난해 미국 팟캐스터 캔디스 오웬스가 브리짓이 실제로는 남성이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퍼뜨리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프랑스 내 반응도 뜨거웠다. 극좌 정당 소속 마뉘엘 봉파르 의원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고, 중도 성향의 국회의장 야엘 브론-피베도 “지금 전쟁터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한 대통령이 웃으며 남을 조롱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프랑스뿐 아니라 스페인·이탈리아는 자국 공군 기지를 미국의 이란 폭격 작전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금지 조치를 취하는 등 오랫 동안 가장 가까운 동맹이었던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현재 그 어느 때보다 멀어진 상황이다.
유럽 상당수 국가들이 이란 전쟁에 대해 “이건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며 미국을 에둘러 비난하고 있다. 유럽 입장에선 원하지 않았던 이란 전쟁을 미국과 이스라엘이 협의도 없이 시작하는 바람에 에너지 비용 급등 등 경제적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도 우리 전쟁이 아니다”라며 나토 탈퇴 및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중단을 시사하며 맞받아쳤다. 그는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에 대해서도 “우리는 중동산 원유가 필요하지 않다”며 동맹국들에 수습 책임을 떠넘겼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아내이자 퍼스트레이디인 브리짓 마크롱 여사. (사진=AFP)
한편 두 정상은 표면적으로는 ‘절친’을 과시하고 있지만, 마크롱 대통령이 사실상 유럽의 대변인 역할을 자처하게 되면서 트럼프 1기 시절부터 기싸움을 벌이는 듯한 장면을 여러 차례 연출했다.
2017년 5월 나토 정상회의에서 처음으로 손을 맞잡았을 때 두 사람은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될 정도로 강하게 맞잡는 장면이 포착됐다. 두 달 뒤 바스티유데이 군사 퍼레이드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긴 악수를 나눈 뒤 서로의 어깨를 두드렸는데, 당시 프랑스 언론은 이를 ‘친근함을 가장한 기싸움’으로 묘사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주도권을 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2기 출범 후 지난해 2월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했을 때에는 무려 17초 동안이나 악수를 나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의 갈등을 반영한다는 해석과 함께, 양측 모두 팽팽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더 강하게 쥐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 10월 이집트 가자지구 평화회의에선 더 길어진 27초 동안 악수를 나눴고, 마크롱 대통령이 겨우 손을 빼내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 팔씨름에서 이겼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이 보낸 개인적인 메시지를 소셜미디어(SNS) 공개하는가 하면, 공식 석상에서 그의 말투와 몸짓을 흉내 내며 조롱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CNN 등 주요 외신들은 “단순한 정상들 간 개인적 설전이나 농담이 아닌 미국과 유럽, 즉 나토 내부 균열이 표면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