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만배럴 반출 충격에…공동비축유 관리 강화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06일, 오전 05:01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정부와 한국석유공사가 석유 수급 위기 상황에서 국제공동비축유 90만배럴이 해외로 빠져나간 걸 계기로 공동비축 관리체계 전반의 손질에 나선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석유공사(ADNOC)의 원유 200만배럴을 실은 유조선이 지난 25일 한국석유공사 여수 석유비축기지에 입항해 원유를 입고 중이다. (사진=석유공사)
5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와 석유공사는 산유국 기업의 공동비축유 수출시 사전 공유 의무를 부여하고, 우선구매권 행사 매뉴얼을 개편하는 등 보완 체계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공동비축은 산유국·해외 기업의 원유를 국내 비축시설에 저장해 임대 수익을 얻는 동시에, 비상시 해당 물량에 대한 우선구매권을 행사해 국내 수급 안정을 도모하는 시스템이다.

정부가 가장 주목하는 대목은 이번 반출 과정에서 석유공사가 사전에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KPC)는 지난달 5~8일 울산 비축기지에 국제공동비축유 200만배럴을 반입하면서 국내 정유사에 판매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이후 베트남 측 긴급 요청에 따라 이 가운데 90만배럴을 해외로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유공사는 첫 반출이 이뤄진 뒤 나머지 110만배럴 수출을 막았지만 초도 물량은 이미 계약·반출된 뒤였다.

정부와 석유공사는 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걸 막고자 산유국 기업이 공동비축유 해외 판매 전 이를 사전 공유한다는 내용을 계약에 반영할 수 있을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우선구매권 행사 기준과 관련된 매뉴얼 개편도 병행할 예정이다. 석유공사는 정부의 원유 자원안보 위기경보 4단계(관심-주의-경계-심각)에 맞춰 공동비축유 우선구매권 행사 매뉴얼을 두고 있는데, 앞선 90만배럴 반출 당시 위기경보는 최저 단계인 ‘관심’으로, 원칙적으론 우선구매권을 발동할 단계는 아니었다. 석유공사는 단순히 단계별 매뉴얼만 따른 건 아니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매뉴얼이 발빠른 대응에 제약 요인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중이다.

산업부는 지난달 20일부터 이와 관련해 감사를 진행 중인 가운데, 감사 결과가 나오는대로 이 같은 개선 방안을 확정해 추진할 계획이다. 통상 부처의 기관 감사는 수주가 걸리는 만큼 이달 중 결과가 나올 수 있지만, 이번 건은 국제 계약 문제도 얽혀 있는 만큼 이달을 넘길 가능성도 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미래에너지융합학과 교수는 “이번 경험을 계기로 비상시 정부와 석유공사가 충분히 상의해 우선구매권을 놓치지 않도록 매뉴얼을 보완해야 한다”며 “공기업에만 책임을 지우기보다 산업부가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그 틀 안에서 공사가 역할을 수행하도록 제도를 고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수 한양대 자원환경공학과 교수도 “위기경보가 ‘관심’에서 ‘주의·경계’로 넘어가는 회색지대에서 자원안보 협의체가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운영 규칙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공동비축유 수출 전 사전 공유 의무화는 산유국 측이 영업기밀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는 것을 넘어 아예 국내 공동비축을 기피하게 할 여지가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제언이 뒤따른다. 약 1억배럴의 국내 원유 비축물량 중 약 13%는 산유국 기업의 공동비축 물량이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해외 기업 입장에서는 ‘우리가 왜 그런 의무를 져야 하느냐’며 아예 국내 비축 이용을 꺼리는 상황이 될 수 있다”며 “기존 계약 구조와 국제 관례를 지키면서 위기시 우리가 먼저 쓸 수 있도록 우선 협조해달라는 수준에서 협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달 31일 26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석유 비축 물량 확대를 위한 예산 2000억원을 반영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로 목표했던 국내 석유비축 물량 1억 260만배럴 확충 시점을 앞당길 예정이다. 또 석유공사는 우선구매권 관련 조항을 근거로 KPC 측에 이미 해외로 빠져나간 90만배럴에 대한 물량 보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석유공사 울산 본사. (사진=석유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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