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이란 석유 빼앗겠다"…對중국 협상 카드 활용 구상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07일, 오후 02:51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석유 부문 장악 구상을 직접 언급한 가운데, 이를 대(對)중국 협상 레버리지와 연결 짓는 다층적 전략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중국의 이란산 원유 접근을 차단하면 다음 달 베이징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진핑 국가주석을 상대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부산 김해국제공항 나래마루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시 주석과 악수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사진=AFP 연합뉴스)
블룸버그통신은 6일(현지시간)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가 이날 이란 석유 장악 방안을 반복적으로 거론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내 뜻대로라면 석유를 가져다 계속 갖고 있겠다. 상당한 수익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봉쇄가 바꾼 판세

이번 발언의 배경에는 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봉쇄가 있다. 해협 봉쇄로 석유·천연가스·비료 수송이 마비되며 국제 유가와 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 중 하나로, 공급 제약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은 베네수엘라와 중동에서의 미국 작전 결과 중국의 레버리지가 실질적으로 약화됐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란 전쟁 이전 중국은 저렴한 이란 제재 원유의 최대 구매국이었다. 전쟁 이후 이란 원유의 할인폭은 소폭 프리미엄으로 역전됐다.

미국이 이전 제재 대상이었던 러시아 원유 구매를 승인한 것도 중국을 압박했다. 중국행 유조선들이 신속하게 인도 등으로 행선지를 바꿨고, 가격도 뛰었다. 워싱턴 소재 클리어뷰 에너지 파트너스의 케빈 북 상무는 “미국 제재가 과거에는 중국이 할인된 가격에 원유를 살 수 있는 문을 열어줬지만, 지금은 미국의 군사 행동이 그 문을 닫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진=로이터
◇베네수엘라 모델, 이란에 적용하나

트럼프는 석유 흐름을 통제하면 국제 무대에서 힘이 생긴다는 믿음을 이미 행동으로 보인 바 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에서 니콜라스 마두로를 축출하고 현 베네수엘라 정부와 협상해 원유 매장량 활용권을 확보했다. 베네수엘라 원유 생산량은 올해 2월 5개월 최고치인 하루 78만8000배럴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이 ‘베네수엘라 모델’의 이란 적용 가능성을 주목한다.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클레이턴 시글 선임연구원은 “하르그 섬을 파괴하거나 점령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이란 무기 체계의 사거리 밖인 아라비아해에서 이란산 석유 화물을 나포해 세계 시장에 매각하는 방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란의 핵심 석유 허브인 하르그 섬 장악 가능성도 별도로 시사했다. 또 이란이 해협을 ‘자유 항행’에 개방하지 않으면 워싱턴 현지시간 7일 저녁부터 이란 교량과 발전소를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백악관 “계획 없다”…트럼프 “전리품은 승자의 것”

다만 백악관 관리는 트럼프가 이란 석유 장악 구상에 호감을 갖고 있지만, 정식 계획은 없으며 현재 추진 중인 방안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이란의 에너지 시설 통제는 적대 행위 종식을 위한 협상 조건에도 명시되지 않았다.

트럼프는 “승자는 전리품을 갖는 법”이라며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이라크 석유를 장악하지 않은 것을 전략적 실수로 거듭 비판했다.

이란의 에너지 부문을 장기적으로 통제하려면 막대한 추가 자금과 인력 투입이 불가피하고 국제법 논란도 예상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다수는 이번 전쟁의 신속한 종결을 원하며, 미국 휘발유 가격 급등에도 시달리고 있다.

◇시진핑은 침묵, 중국은 버틸 준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다른 아시아 지도자들과 달리 이란 전쟁에 대해 아직 직접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중국은 수년간 대규모 비축량 확충, 자국 탄화수소 생산 강화,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을 통해 이런 상황에 대비해왔다. 유가가 현 수준을 유지하면 중국 정제업계가 타격을 받겠지만, 중국이 경제적 고통을 상당 기간 감내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2025년 고율 관세 부과 당시에도 과소평가했던 부분이다.

트럼프의 이란 석유 장악 구상이 실현될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그 자체로 오는 5월 14~15일 베이징 정상회담에서 협상 압박 카드로 기능할 수 있다. 한국 입장에서는 이란 전쟁 장기화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지속이 에너지 수급과 수출 물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미·중·이란 삼각 구도의 향방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공언한 가운데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갈등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지난달 7일(현지시간) 유조선 뤄자산(Luojiashan)호가 오만 무스카트 해역에 정박해 있다. (사진=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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