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주식 공매도 '사상 최대'…전쟁發 에너지 충격에 베팅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08일, 오전 10:58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글로벌 헤지펀드들이 이란 전쟁 여파를 겨냥해 유럽 주식에 대한 공매도 포지션을 사상 최대 규모(건수 기준)로 쌓고 있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순에너지 수입 지역인 유럽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베팅이다.

7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유럽 상장 주식에 대한 공매도 공시 건수는 약 1만2000건으로, 공매도 공시 제도가 도입된 2012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데이터 업체 브레이크아웃 포인트(Breakout Point)가 집계한 수치다.

유럽 증시 공매도 공시 건수 추이 (단위: 건수, 자료: 브레이크아웃 포인트FT) *2026년 1분기 사상 최고치 기록 *공매도 포지션은 기업 발행 주식의 0.5%에 도달하면 공시 의무 발생
◇AQR·투시그마, 공매도 1년 새 폭증

헤지펀드 AQR캐피털매니지먼트의 유럽 상장 주식 공시 공매도는 1년 전 54건에서 현재 128건으로 2배 이상 늘었다. 투시그마인베스트먼츠는 같은 기간 3건에서 85건으로 약 28배 급증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유럽 주식 전략가 안드레아스 브루크너는 “유럽은 위기 상황에서 공매도하기 좋은 시장처럼 보인다”며 이란 전쟁 진행을 그 배경으로 꼽았다. 그는 유럽이 한때 ‘글로벌 성장 거래의 핵심 수혜자’였지만 이제는 ‘점차 가시화되는 에너지 위기에 가장 많이 노출된 지역’으로 바뀌었다고 진단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에 유럽 직격탄 우려

이란 전쟁 발발 이후 브렌트유 가격은 50% 급등해 배럴당 약 110달러(약 16만원) 수준까지 오르기도 했다. 유럽 천연가스 기준물인 TTF 가격도 65% 넘게 치솟았다. 에너지 충격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경제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유럽은 순에너지 수입 지역으로, 순에너지 수출국인 미국보다 에너지 가격 충격에 훨씬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유럽 대표 주가지수인 스톡스유럽600(Stoxx Europe 600)은 전쟁 발발 이후 6% 넘게 떨어지며 연초 이후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했다.

◇항공·건설·게임주 집중 타깃

공매도 세력은 에너지 가격 상승에 직접 노출된 업종을 집중적으로 겨냥하고 있다. 런던 상장 저가항공사 위즈에어(Wizz Air)는 전쟁으로 인한 항공편 차질과 연료비 급등으로 올해 이익이 전부 증발할 수 있다고 경고한 이후 지난달 유럽 최고 공매도 종목으로 올라섰다. 이란 전쟁 이후 공매도 비중은 2배 가까이 늘어 15%에 달했고, 주가는 25% 넘게 폭락했다. 경쟁사 이지젯(easyJet)도 공매도 표적에 올랐다.

영국 벽돌 제조업체 이브스톡(Ibstock)에는 헤지펀드 시타델(Citadel)과 DE쇼(DE Shaw)가 공매도를 늘리거나 새롭게 포지션을 공시했다. 공매도 비중은 12%를 넘어섰다. 바클레이스(Barclays)의 에마뉘엘 코 유럽 주식 전략 헤드는 “전쟁이 에너지 가격과 금리에 미치는 영향이 영국 소비자와 생활비 위기에 대한 우려를 되살렸다”고 말했다.

인공지능(AI)에 의한 사업 잠식 우려도 공매도를 부추기고 있다.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로 알려진 게임사 유비소프트(Ubisoft Entertainment)는 구조조정과 신작 취소·연기를 발표한 이후 유럽 내 공매도 상위 종목으로 떠올랐다.

◇韓도 에너지 수입국…남의 일 아니다

유럽 공매도 급증은 한국 시장과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역시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구조로, 브렌트유와 천연가스 가격 상승은 국내 기업의 원가 부담과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진다. 항공·정유·화학 등 에너지 민감 업종은 유사한 구조적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다음 변수는 이란 전쟁의 장기화 여부와 에너지 공급망 교란의 심화 정도다. 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를 경우 유럽 공매도 베팅의 규모와 범위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에너지 가격 고공행진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경우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 경로도 흔들릴 수 있다.

지난 5일 서울 만남의광장 알뜰주유소를 찾은 시민들이 차량에 주유를 하고 있다. (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