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전으로 中 입지 오히려 강화…韓은 두개의 전쟁 치러야"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10일, 오전 11:29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이란 사태를 겪으면서 중국의 입지는 오히려 올라갔고 미국은 약해졌다.”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 허브(TSI Hub) 원장은 지난 9일 법무법인 태평양과 한국국제통상학회가 공동 주최한 ‘트럼프 관세전쟁 시즌 2, 불확실성의 구조화와 국제통상질서의 전환’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란 전쟁이 드러낸 역설을 압축한 발언이다. 전쟁을 주도한 미국의 협상력은 오히려 약해졌고,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는 미국 스스로 풀었다. 국제 통상 및 제재 전문가들은 이 전쟁이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미중 패권 경쟁의 판도와 글로벌 제재 질서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 허브(TSI Hub) 원장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전쟁이 미국을 약하게 만들었다

최 원장은 미국이 이란 전쟁에 발이 묶이면서 대(對)중국 협상 지렛대가 약화됐고, 그 틈을 중국이 파고들었다고 분석했다. 당초 3월 말~4월 초로 예정됐던 미중 정상회담은 5월로 조정됐다. 최 원장은 “5월로 일정이 잡힌 미중 정상회담 때문에 이란이 어렵게 휴전을 결단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미중이 정상회담 테이블에 앉아야 하는 상황이 됐고, 이란도 그에 맞춰 휴전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5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신문 헤드라인용 스몰딜(작은 성과)은 나오겠지만 미중 패권 경쟁은 말 그대로 휴전일 뿐 본질적 경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연합(EU)의 부재도 이 역설을 심화시킨다. 그린란드 사태 이후 미-EU 관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EU가 중재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일본은 5500억 달러(약 814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며 미국의 신뢰를 먼저 확보했다. 한국도 3500억 달러(약 518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지만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아직 윤곽이 잡히지 않은 상태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그 틈에 일본이 빠르게 치고 나왔다”며 “한국은 아직 구체적인 밑그림이 없다”고 지적했다.

◇전쟁 중에 적국 제재를 스스로 풀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이란에 대해서는 제재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다 제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쟁을 하면서도 제재를 푼다.”

지난 8일 법무법인 율촌이 개최한 ‘트럼프 2.0 시대 미국 통상정책과 ITC·경제제재 대응 전략’ 세미나에서 신동찬 율촌 국제제재팀장(변호사)은 이같이 말했다. 미국이 교전 상대국의 원유 제재를 스스로 해제한 역설을 꼬집은 발언이다.

배경은 유가다. 이란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자 국제 유가가 급등했고, 미국 내 휘발유 가격은 갤런(약 3.8리터)당 4달러 선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에게 유가는 곧 민심이다. 신 변호사는 “1갤런 4달러가 트럼프 행정부의 마지노선”이라고 말했다.

결국 미 재무부는 지난달 중순 해상에 선적된 러시아산 원유의 제재를 한시 유예한 데 이어, 지난달 20일 이전 선적된 이란산 원유에 대해서도 같은 조치를 취했다.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NBC 방송에 출연해 “이란 원유는 늘 중국에 할인된 가격으로 팔린다. 한국·일본·인도네시아로 향한다면 미국 입장에서 더 나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경제제재가 외교·안보의 압박 수단이 아니라 물가 관리의 도구로 전용된 것이다. 신 변호사는 이를 “제재의 논리가 전쟁의 논리에 역전당하는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신동찬 법무법인 율촌 국제제재팀장(변호사) (사진=법무법인 율촌)
역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제재가 풀렸지만 한국 기업들은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허용 범위가 불분명한 데다 이란·러시아 관련 결제를 꺼리는 은행들의 관행 때문에 실제 거래를 완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율촌 세미나에 참석한 한 물류기업 관계자는 “(제재 완화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 판단하기가 굉장히 애매한 상황”이라며 실무적 혼란을 토로했다. 제재가 살아있을 때는 제재 때문에 못 하고, 제재가 풀렸을 때는 불확실성 때문에 못 하는 셈이다.

신 변호사는 “제재 완화가 이뤄졌다 해도 전문가와 충분한 사전 상의 없이는 거래를 설계하기 어렵다”며 “연장 여부, 조건 변화, 은행·선사 섭외까지 동시에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러야”

이란전이 만든 두 가지 역설은 결국 한국에 고스란히 전가된다. 미국의 협상력이 약해진 틈에 중국의 입지가 강해졌고, 제재는 풀렸지만 한국 기업은 그 혜택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다. 이 구도 속에서 미국은 관세로, 중국은 희토류와 공급망으로 서로를 압박하고 있고, 한국은 그 한가운데 놓여 있다. 최병일 원장은 “한국은 지금 미국과 중국, 두 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러야 하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올초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가 남긴 말처럼 “협상 테이블에 앉지 못하면 식탁의 메뉴가 될 것”이라는 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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