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9일(현지시간) “이란 전쟁이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전쟁 목표를 후퇴시키고, 미국의 새로운 권력 행사 방식에 대한 그의 비전이 얼마나 얕은지를 드러냈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사설을 통한 신랄한 비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전쟁의 가장 설득력 있는 3대 명분으로 △중동의 안보와 번영 확보 △이란 체제 전복 △핵보유 영구 저지를 꼽은 뒤, 세 가지 모두 달성에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우선 중동 안보는 오히려 악화됐다. 전쟁 이전 이스라엘이 이란의 대리 무장세력 네트워크를 부분적으로 해체했으나, 이란은 걸프 국가 공격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새로운 레버리지를 확보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행료 수입을 이란과 분배하는 방안을 검토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다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명분으로 내세웠던 반(反)정부 시위 개입 및 체제 전복도 실현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체제 붕괴를 주장했으나, 실제로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사후 아들인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최고지도자 자리를 물려받으면서 이란 혁명수비대(IRGC) 강경 민족주의 세력이 실권을 장악하는 방향으로 권력 이전이 이뤄졌다.
오히려 전쟁 이전이 정권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47년 역사상 가장 높았던 시기였으며, 전쟁이 민족주의적 결집을 불러오면서 체제 전복 가능성은 되레 낮아졌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분석했다. 즉 전쟁 전에 정권이 가장 위태로웠는데, 전쟁 때문에 되레 정권이 살아남았을 뿐더러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핵 위협은 더 심각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핵탄두 10개를 만들 수 있는 약 400kg의 고농축 우라늄이 여전히 지하 핵시설에 매장돼 있으며, 향후 공격을 억지하기 위해 핵무기를 제조할 유인이 오히려 커졌다. 이를 저지하려면 트럼프와 후임 대통령들이 수년마다 군사행동에 나서야 할 수 있는데, 이번 전쟁의 경험에 비춰보면 이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후퇴를 강경 발언으로 포장…전쟁 재개 않을 것”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을 재개하지 않을 가장 큰 이유는 애초에 시작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란 문명 파괴를 위협하는 혐오스러운 과시는 “자신의 후퇴를 강경 발언으로 강한 척 포장하려 한 것”이란 진단이다. 전쟁을 재개하면 시장이 공황에 빠지게 되고, 중동의 ‘황금시대’를 선언했던 자신이 바보처럼 보일 수 있다는 위험을 트럼프 대통령 본인도 인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이란이 협상에서 과도한 요구를 밀어붙일 경우엔 전쟁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이란은 해·공군이 전멸했고 미사일·드론 대부분을 소진했으며, 2만 1000회 이상의 미국·이스라엘 공습으로 경제가 수년간 후퇴한 상태다. 현 상황에서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상처투성이인 이란 정권이 권력에 매달리며 협상에서 최대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봤다.
◇“무력은 최후의 수단…힘만 앞세운 美 한계 드러나“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전쟁의 가장 근본적인 교훈으로 ‘힘이 곧 정의’(might is right)라는 사고방식의 실패를 꼽았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힘은 전통적으로 군사력과 도덕적 권위가 결합될 때 발휘됐다”며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문명 소멸을 위협한 것은 도덕성을 힘의 원천이 아닌 걸림돌로 여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미군이 인공지능(AI)을 작전에 통합하고 격추된 조종사를 구출하는 등 군사적 우위도 과시했지만, 군수물자를 충분히 빠르게 재보급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와 ‘전략 없는’ 압도적 화력은 오히려 미국의 힘을 소진시키는 현실도 함께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역사상 유례없는 군사력을 보유하게 됐지만, 선제공격에 대한 욕구가 역내 공포와 혐오를 낳고 있다”며 미국인의 60%가 이스라엘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어 오히려 입지가 약화했다고 평가했다. 걸프 국가들도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을 재고하거나 이란과의 타협을 모색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분석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란은 사악한 정권이지만, 전쟁이 정당화되려면 무력이 정말 최후의 수단인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런 판단 없이 이란을 자기 과시용 프로젝트로 취급했다. 미국이 강하니까 결과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긴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그러나 힘이 곧 정의가 될 수는 없다. 때로는 승리조차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