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 적 없다"는데 송장 들통…中에 흘러간 엔비디아 AI칩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10일, 오후 05:08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이 금지한 엔비디아의 최첨단 인공지능(AI) 반도체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간 구체적 정황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중국 선전 소재 AI 기업이 금지된 엔비디아 칩이 탑재된 서버 수백 대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통제에 사각지대가 존재한다는 점이 다시 한번 부각됐지만, 엔비디아와 서버 제조사 모두 판매한 적도 구매한 적도 없다며 일제히 발을 뺐다.

(사진=AFP)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중국 정부 기관에 제출된 기업 서류를 분석한 결과, 선전 소재 ‘셰어트로닉 데이터 테크놀로지’(Sharetronic Data Technology)가 미국 서버업체 슈퍼마이크로컴퓨터(SMCI) 제품인 ‘SYS-821GE-TNHR’ 서버 276대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서버에는 엔비디아의 H100 또는 H200 프로세서가 탑재돼 있으며, 총 가치는 6억 3200만위안(약 1375억원)에 달한다.

이 칩들은 챗GPT 등 대규모 AI 모델 훈련의 표준으로 쓰이는 최첨단 반도체로, 미국은 2022년부터 중국에 대한 판매를 금지해왔다. 블룸버그는 지난해 5~6월자로 작성된 두 건의 송장(인보이스)을 확보해 이를 중국 국세청 관리 데이터베이스의 기록과 대조·확인했다.

◇엔비디아·슈퍼마이크로·델 “우리는 모른다”

관련 기업들은 일제히 거리를 뒀다. 슈퍼마이크로는 “셰어트로닉에 제품을 판매한 적이 없으며, 고객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고객들에게 미국 정부 승인 없이 통제 대상 서버를 제공하지 말라는 명시적 지침을 내리고 있다”고 입장을 냈다.

블룸버그가 확인한 송장에는 델의 ‘파워엣지 XE9680’ 서버 32대도 포함돼 있었는데, 델 역시 “해당 판매 기록이 없다”며 “제품이 무단 전용된 것으로 확인될 경우 거래를 즉시 중단하는 등 신속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밝혔다.

셰어트로닉은 블룸버그의 질의에 송장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슈퍼마이크로와 어떤 사업 협력 관계도 없다”는 기존 입장만 반복했다. 다만 “보유 서버는 모두 합법적이고 적법한 경로를 통해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엔비디아 클라우드 파트너 지정받고 7조원 장비 쇼핑

셰어트로닉은 2024년 ‘광저우 에프클라우드 테크놀로지’(FCloud)라는 합작법인을 설립해 중국 내 AI 데이터센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에프클라우드는 같은 해 말 엔비디아의 ‘클라우드 파트너(NCP)’ 인증을 획득했는데, 중국에서 이 인증을 받은 기업은 8곳에 불과하다. 이후 셰어트로닉은 총 322억위안(약 7조원) 규모의 하드웨어 조달 계획을 발표하며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블룸버그는 셰어트로닉이 은행 대출을 받으면서 AI 서버를 담보로 제출한 서류에서 17건의 송장을 추적해, 전체 조달 계획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60억위안(약 1조 3050억원)어치 서버의 내역을 확인했다. 대부분은 일반적 명칭으로만 기재됐으나, 두 건의 송장에서 슈퍼마이크로와 델 제품의 구체적 모델명이 드러난 것이다.

◇수출통제 사각지대…“밀수 못 막는다”

이번 보도는 미국의 반도체 수출통제가 글로벌 공급망의 복잡성 앞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엔비디아는 최종 사용자에게 직접 칩을 판매하지 않고, 슈퍼마이크로 같은 서버 조립업체와 유통업체를 거치는 다단계 유통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종 목적지를 의도적으로 위장할 수 있는 빈틈이 생긴다는 지적이다.

미 법무부는 지난달 슈퍼마이크로 공동창업자 야-시안 ‘월리’ 리아우를 25억달러(약 3조 7100억원) 규모의 엔비디아 서버 불법 반출 혐의로 기소한 바 있다. 리아우는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당시 기소장에는 최종 수요처가 명시되지 않았는데, 셰어트로닉이 그 수요처 중 하나인지 여부에 대해 미 검찰은 논평을 거부했다.

한편 동남아시아에서도 엔비디아 NCP 인증을 받은 2개 업체가 반도체 수출통제 위반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어, 미국의 대중국 칩 봉쇄망에 다수의 구멍이 뚫려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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