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해협 지도. (사진=로이터)
FT에 따르면 현대 국제 해양법은 국가가 자국 영해를 통과하는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법무법인 왓슨, 팔리 앤 윌리엄스(Watson, Farley & Williams)의 앤드루 리그든 그린 파트너는 FT에 “국제 수로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은 복잡하고, 불법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스탄불 기반 보스포루스 옵서버(Bosphorus Observer) 컨설팅의 요뤽 이식 해운 분석가는 “자연 수로의 통항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는 수백 년의 해양법을 뒤집을 수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란의 공식 선언은 미국과의 불안한 휴전 합의 이후 나왔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해협을 봉쇄하고 소수 선박만 통항을 허가하던 교전 기간 중에도, 이미 일부 선박들은 건별로 통행료를 지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석유·가스·석유화학제품 수출업자 연합은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암호화폐로 납부할 것을 주문했다.
◇400년 버틴 덴마크도 미국에 결국 무릎
역사를 돌아보면, 국제 수로에서 통행료를 징수한 사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끝은 대체로 외압에 의한 굴복이었다.
18세기 말 오스만 제국은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과해 흑해로 향하는 선박들에 ‘이즌-이 세피네이’(Izn-i sefinei·선박 통항 허가증)라는 통행세를 부과했다. 현재 가치로 약 1만5000달러(약 2230만원) 수준이었다. 오스만은 흑해를 자국의 내해로 간주하며 정교한 과세 체계를 운영했다.
더 오랜 전례는 덴마크에서 찾을 수 있다. 덴마크 왕실은 1429년부터 외레순(Øresund) 해협에서 통행세를 징수했다. 셰익스피어의 ‘햄릿’ 배경으로 유명한 엘시노어(헬싱외르)에 선박을 기항시키고 화물 가치의 1~5%를 세금으로 걷었다. 당시 영국 하원 보고서는 이를 “무역에 부과되는 가장 불합리한 세금”으로 규정했다. 결국 점점 강성해진 미국의 압박에 밀린 덴마크는 1857년 보상금을 받는 조건으로 400년 넘게 이어오던 관행을 폐지했다.
튀르키예 다르다넬스 해협 지도.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에 있어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좁은 해협이다. (사진=구글 지도)
이란이 통행료 논거로 내세울 법한 사례는 수에즈 운하와 파나마 운하다. 두 운하 모두 통행료를 징수하며 각각의 관할 기관에 매년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사우샘프턴대학교의 앤드루 서디 국제해양법 교수는 “운하는 육지 영토를 관통하며, 파나마와 이집트는 조약에 구속될 뿐 완전한 주권을 갖는다”고 설명했다. 통행료가 조약에 의해 명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다. 2023년 수에즈 운하의 통행료 수입은 사상 최고인 103억 달러(약 15조3000억원)를 기록했지만, 이후 중동 분쟁의 여파로 물동량이 급감하며 수익이 크게 줄었다.
전문가들이 호르무즈와 가장 가까운 비교 대상으로 꼽는 것은 오히려 튀르키예의 보스포루스 해협이다. 몽트뢰 협약(Montreux Convention)의 적용을 받는 보스포루스는 통항 자체에 요금을 물릴 수 없으며, 등대·위생검역·구조 서비스 비용만 별도로 징수한다. 이를 통해 터키가 거두는 수입은 연간 약 2억5000만 달러(약 3713억원) 수준이다.
해운 분석 업체 케이플러(Kpler)는 호르무즈 해협이 유료 통항 구간으로 공식화될 경우, 이란과 오만이 연간 50억~80억 달러(약 7조4275억~11조8840억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추산했다. 두 나라의 영해가 해협 남쪽 절반을 공동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 보스포루스 해협 지도. (사진=구글 지도)
법적·구조적으로도 이란의 처지는 과거 사례들과 다르다. 엑서터대학교의 해양사학자 헬렌 도는 “다른 사례들과 달리 이란은 해협의 한쪽 측면만 보유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들은 수로 양안을 모두 통제했다”고 지적했다.
이란과 미국 모두 국제 해상 통항을 규율하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을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이란은 1982년 협약 서명 당시, 협약의 당사국이 아닌 국가는 해협의 자유통항권을 누릴 수 없다는 선언을 첨부해 미국을 겨냥했다. 왓슨, 팔리 앤 윌리엄스의 조지 마케라스 해양 부문 대표는 혁명수비대의 통행료 징수를 영국군이 영국해협 이용료를 부과하는 것에 비유했다.
독립 탱커 선주 협회인 인터탱코(Intertanko)의 필립 벨처 해양 담당 이사는 “통행료 납부는 국제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그 부과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세계 해상 원유·가스 물동량의 약 20% 이상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향방은 단순히 이란과 미국 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전체 원유 수입의 약 70%를 중동에 의존하며, 그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부과 여부와 그 수준은 국내 에너지 비용과 물가에 직결된다. 이란이 과거의 덴마크처럼 국제적 압박에 결국 물러설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형태의 해양 질서를 만들어 낼 것인지가 앞으로의 핵심 변수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