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내세웠지만 결국 '돈'…동결자산·배상금 놓고 미·이란 평행선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12일, 오후 09:16

[이데일리 성주원 김겨레 기자]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 이후 47년 만에 마주 앉은 미국과 이란의 최고위급 협상은 결국 빈손으로 끝났다. 밤샘 마라톤 협상 끝에 양측이 확인한 것은 합의가 아니라 간극이었다. 이번 협상의 표면적 결렬 이유는 핵이었다. 밴스 부통령은 “이란이 핵무기를 지금뿐 아니라 장기적으로도 추구하지 않겠다는 근본적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협상 내막을 들여다보면 동결자산 해제와 전쟁 배상금 등 ‘돈’과 얽힌 복잡한 셈법이 놓여 있다는 분석이다.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월스트리트저널(WSJ), CNN 등에 따르면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기존의 우라늄 농축 포기·고농축 우라늄 반출 요구에 더해 호르무즈 해협 관리권을 미국이 행사하겠다는 새로운 조건을 제시했다. 이란 측 분석가 알리 골하키는 미국이 ‘제로 농축’과 약 450㎏에 달하는 비축 우라늄의 국외 반출, 호르무즈에 대한 미국의 자의적 권리권까지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이란 타스님 통신은 “전쟁에서 얻을 수 없었던 양보를 협상장에서 얻어내려는 것이 미국의 의도였으나 이란 대표단이 이를 막았다”고 보도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호르무즈, 이란의 ‘마지막 지렛대’

협상의 본질적 교착은 호르무즈 해협에 있다. NYT는 복수의 이란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이란이 최종 합의 타결 이후에야 해협을 개방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전했다. 호르무즈 봉쇄를 최대 협상 카드로 쥐고 있는 이란으로서는 ‘선 개방’이 협상 주도권을 미국에 넘기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계산이다.

이란의 이 같은 판단에는 이유가 있다.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쾌속정 함대의 60% 이상이 여전히 건재하다고 미국 싱크탱크 워싱턴연구소가 분석했다. 이란이 호르무즈를 틀어쥐고 있는 한 미국도 쉽게 압박의 고삐를 조일 수 없다.

반면 미국은 유가 급등과 국내 경기 악화의 부담을 안고 있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94달러 수준으로 개전 이후 30% 이상 오른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당일 “합의가 되든 안 되든 미국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협상 중 트럼프 대통령과 10차례 이상 통화한 밴스 부통령이 이 발언을 그대로 믿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핵 문제는 더 근본적인 딜레마를 안고 있다. WSJ는 이란이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에도 약 450㎏에 달하는 고농축 우라늄 비축분을 포함해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대부분 요소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비축분의 절반은 이스파한 핵시설 지하 터널 깊숙이 묻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란이 핵 포기를 거부하는 배경에는 핵무기가 없었기에 공격당했다는 인식과 분석이 있다. 이란으로서는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라는 미국의 요구가 항복 종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이란은 ‘평화적 원자력 에너지 사용 권리’를 포기할 수 없다고 반발한다.

미 국무부 전 중동 협상가 애런 데이비드 밀러는 CNN에 “이란은 여전히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하고 있고,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고 있다. 정권도 유지되고 있다”며 “이란은 양보를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동결자산 해제도 핵심 의제였다. 밴스 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동결자산 문제를 포함해 “모든 사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 에스마일 바가이도 미국의 대 이란 제재 완화와 해외 동결자산 해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랐다고 확인했다. 이란은 동결자산 해제를 협상 선결 조건 중 하나로 내세워온 만큼, 이 문제에서도 양측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협상장 밖 군사 압박…“이란, 미국 초조함 읽었다”

협상이 한창이던 11일, 미군 유도미사일 구축함 2척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개전 이후 첫 미 군함 통과였다. 미 중부사령부는 “기뢰 제거 여건 조성을 시작했다”고 밝혔고, 트럼프 대통령도 트루스소셜에 “호르무즈 해협 기뢰 제거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고 썼다.

이란 IRGC는 즉각 “군함은 강력한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고 미군 함정을 향해 무선 교신으로 “이것이 마지막 경고”라고 반복 통보했다. 이란과의 사전 조율 없이 이뤄진 이 작전이 협상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으로서는 이 작전에서 미국의 초조함을 읽었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앞으로의 협상 시나리오는 크게 세 갈래다. 먼저, 이란이 미국의 ‘최종 제안’을 수용해 추가 협상을 재개하는 경우다. 밴스 부통령은 “이란이 수용하는지 지켜보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다음으로는 이달 21일 휴전 만료를 앞두고 양측이 기간 연장에 합의해 협상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마지막은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고 전쟁을 재개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단기 타결에 회의적이다. 밀러는 “이란이 빈손으로 협상을 마치기보다 군사 공격 재개 위험을 감수하는 쪽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CNN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미국이 승리했다고 주장해온 점을 고려하면 전쟁 재개 의지가 얼마나 있는지 불분명하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로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페르시아만에 고립된 우리 선박 26척과 선원 173명의 귀국 여부는 더욱 불투명해졌다. 정부는 정병하 극지협력대사를 외교장관 특사로 이란에 급파했다. 중동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국내 에너지 수급도 협상 향방에 직결된 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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