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포스트(WP)는 12일(현지시간) “중국이 먼저 희토류 시장 지배력을 앞세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전쟁에서 휴전을 이끌어냈고, 뒤이어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사실상 봉쇄하며 글로벌 에너지 시장을 인질로 잡았다”며 이같이 평가했다. 달러화 결제망 차단과 첨단기술 접근 제한 등 한때 ‘경제 전쟁’의 독점적 수단을 누리던 미국이 이제 같은 방식으로 역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 전쟁 역사를 다룬 ‘초크포인트’(Chokepoints·경제 급소)의 저자 에드워드 피시먼은 “세계 경제는 중국과 러시아가 우리의 친구가 될 것이라 가정했던 1990년대의 우호적 환경을 위해 설계됐다”며 “지정학적 경쟁이 심화되면서 새로운 세계 경제가 만들어질 때까지 이 과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임기에서도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 약 2만개 중국 기업에 대한 수출 통제 확대 등 금융 제재를 적극 활용해왔다. 그러나 상대국이 경제적 우위를 무기화하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지난해 4월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맞서 희토류 수출을 금지했을 때 그는 트루스소셜에서 “정말 놀랐다”고 토로했으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도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했다.
미 상원 재정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론 와이든 의원에 따르면 미 재무부는 이번 전쟁이 개시되기 전에 에너지 시장에 대한 사전 분석을 전혀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재무부 경제정책 차관보 지명자 스리프라카시 코타리는 위원회 보좌진에게 “에너지 시장 관련 업무를 수행한 적이 없으며, 재무부에서 그런 분석을 한 사람도 알지 못한다”고 털어놨다.
이에 ‘언더그라운드 엠파이어’ 공동 저자 헨리 패럴은 “미국이 모든 전략적 목줄을 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불안정한 휴전 이후에도 페르시아만에는 유조선·화물선 800척을 포함해 약 3200척의 선박이 해협 서쪽에 발이 묶여 있다. 코넬대 니콜라스 멀더 교수는 “호르무즈 해협을 틀어막은 이란의 전략은 ‘흐름 통제’(flow control)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가장 큰 힘은 완전 봉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누가 지나가고 누가 못 지나가는지를 통제하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이란은 비적대국 선박에 한해 통행료를 받고 소량씩 통과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바나나 포장재부터 비료까지…실물경제 충격 확산
문제는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장악이 미국 실물경제 충격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휘발유·경유뿐 아니라 매트리스, 비료, 알루미늄, 플라스틱, 과일·채소 가격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플로리다 코럴게이블스의 과일·채소 기업 프레시 델 몬테의 모하메드 아바스 사장은 “연료비가 30% 이상 올랐고, 그 30%가 직접적으로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것의 비용 증가로 이어진다”며 “미국 소비자들은 아직 이 전쟁의 충격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델 몬테 바나나 포장용 골판지를 생산하는 제지공장은 막대한 연료를 소비하고, 과일 운송에 쓰이는 진공 비닐봉지의 원료인 수지(레진)는 사우디아라비아 SABIC이 생산하는데, 며칠 전 이란의 미사일·드론 공격으로 주바일 산업단지 시설이 타격을 받아 정상 가동까지 최대 1년이 걸릴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이란은 국제 수로를 이용한 단기적 세계 갈취 외에는 카드가 없다”고 일축했지만 외신들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내세우는 그가 세계화의 역습으로부터 자국 소비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깊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