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유럽에 손 내밀어 美 압박…대서양 분열을 지렛대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15일, 오후 02:00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이란이 1년 넘게 단절했던 유럽에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유럽을 지렛대로 활용해 양보를 이끌어내겠다는 외교적 전략 전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럽 동맹국 간 분열이 깊어지는 틈을 파고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 (사진=AFP)
14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란의 아바스 아라그치 외무장관은 지난 주말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미국과의 회담이 합의 없이 끝난 직후 프랑스의 장노엘 바로 외무장관과 독일의 요한 바데풀 외무장관에게 전화 브리핑을 진행했다. 사우디아라비아·오만·카타르 외무장관과도 동일한 브리핑을 가졌다. 아라그치 장관은 21시간에 걸친 집중 협상에도 파키스탄 주도의 프로세스가 소진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문제와 관련해 이스라엘과 공조에 집중하며 1년 넘게 유럽을 소외시켰다. 같은 기간 이란 역시 유럽을 미국에 종속된 세력으로 치부하며 무시해 왔다. 그러나 대서양 양안 분열이 심화하고 유럽 경제에 대한 압력이 가중되면서 이란이 유럽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잠재적 지렛대로 재평가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이란은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이를 관철하기 위해서도 유럽의 동의가 필요하다. 퀸시연구소의 트리타 파르시 소장은 “이란은 유럽을 가능한 한 자국 쪽으로 끌어올 수 있는지 타진할 것”이라며 “그것이 안 되면 모든 유럽 국가가 독일·프랑스·영국이 정한 노선을 따르지 않아도 되는 더 깊은 내부 분열이 있는지 살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란은 특히 비교적 낮은 통행료로 이 메커니즘을 신속히 구축하고 최대한 많은 국가의 동의를 얻으려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단기적으로 이란은 기뢰 제거 장비를 보유한 독일·영국·이탈리아에 대해 미국의 호르무즈 해협 기뢰 제거 압력에 저항해 달라고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이를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항구 역봉쇄를 지원하는 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위치가 파악되지 않은 기뢰 제거는 평화로운 환경에서도 위험하지만, 이란 드론의 공격을 받으며 수행해야 한다면 위험은 훨씬 커진다.

이탈리아의 경우 트럼프 대통령의 교황 공격과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의 선거 패배가 겹치면서, 조르자 멜로니 총리가 미국 측의 요구나 압력에 응하기 이미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는 물론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도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은 미국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전쟁 종료 이후를 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방어적·비교전적 해군 동맹 구축에 나선 것.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 제안을 논의하기 위한 영국과의 세 번째 합동 회의를 발표했다.

문제는 어떤 계획이든 이란과의 협의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란 의회에 제출된 호르무즈 해협 통제 법안은 유조선뿐 아니라 모든 상업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제재를 피하기 위해 가상자산(암호화폐) 결제를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전직 미국 이란 특사 로버트 맬리는 “이란은 핵폭탄 획득보다 더 효과적인 새로운 억지 수단을 발견했으며, 그것이 바로 호르무즈 해협 폐쇄”라고 짚었다.

유럽 외교관들은 미국의 제재 완화가 영구적이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이란이 핵 양보에 나서도록 설득하는 것이 핵심 과제라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이란은 핵 프로그램과 관련해서는 고농축 우라늄을 제3자에게 인도하는 대신 ‘희석’할 의향이 있었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이란·미국·사우디아라비아가 참여하는 컨소시엄이 구성될 예정이었으나 미국 측이 발을 뺐다는 주장이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소피아 베슈 선임연구원은 “유럽 재무장에 대한 유권자 지지를 유지하려면 군사적 모험주의와 일방적 전쟁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며 “유럽이 이란 문제에서 미국에 더 비판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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