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IMF·세계은행(WB) 춘계회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AFP)
◇에너지 충격,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
알리 빈 아흐메드 알 쿠와리 카타르 재무장관은 “현재 상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1~2개월 내 일부 국가는 전력을 공급할 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액화천연가스(LNG) 수출 차질이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에너지 충격이 실물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될 가능성을 지적했다.
이 같은 에너지 충격은 단순히 가격 상승에 그치지 않고 ‘실물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일부 국가에서는 전력 공급 차질이 현실화할 수 있고, 이는 산업 생산 위축과 경기 둔화로 직결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비료 공급 부족 문제가 겹치면서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비료 생산 비용을 끌어올리고, 이는 농업 생산 감소와 식량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2차 충격’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카타르는 또 전 세계 헬륨 공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는 핵심 국가다. 헬륨은 반도체 제조 공정에 필수적인 자원이라는 점에서, 공급 차질이 첨단 산업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알 쿠와리 장관은 “이번 전쟁의 경제적 파장은 매우 클 것이며, 그 영향은 생각보다 빠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IMF는 이미 이러한 리스크를 반영해 세계 경제 성장률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세계경제전망(WEO)에서 올해 글로벌 성장률을 3.1%로 제시했는데 이는 전쟁 이전 예상치(3.3%)보다 낮아진 수치다. 중동 충돌이 유가 급등과 공급망 교란을 촉발하며 경제 전반에 충격을 가하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동시에 전쟁 이전까지 유지되던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 흐름이 사실상 중단됐다는 점도 강조됐다.
피에르-올리비에 구린샤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동 전쟁 발발 이후 글로벌 경제 전망이 급격히 어두워졌다”며 “전쟁이 기존의 안정적인 성장 궤도를 중단시켰다”고 밝혔다. 그는 “에너지 공급 차질이 지속될수록 글로벌 경제는 점점 더 부정적인 시나리오에 가까워지고 있다”며 “현재로서는 2.5% 성장률을 가정한 ‘악화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하방 리스크가 매우 크다”고 강조하며 향후 추가 하향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IMF는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보다 심각한 시나리오도 제시했다. 에너지 공급 차질이 내년까지 이어질 경우 글로벌 성장률은 2% 수준까지 떨어지고, 인플레이션은 6%까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글로벌 경기침체에 근접한 수준으로 평가된다.
설령 전쟁이 조기에 종료되더라도 충격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IMF는 올해 유가가 평균 21.4% 상승하고, 에너지 원자재 가격도 19%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철강·시멘트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의 비용 상승으로 이어지고, 소비자 구매력을 약화시키며 결국 중앙은행의 긴축 압력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에너지 충격은 단순한 가격 상승을 넘어 ‘실물 부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IMF·WB 춘계회의에서도 공급망 교란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경제 구조 자체가 변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성장 둔화 불가피”…시장 낙관과 괴리
유럽에서도 우려가 커지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성장 둔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으며,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 총재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공급망이 정상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도 “현재 에너지 충격은 아직 본격적으로 반영되지 않았을 수 있다”며 “3월보다 4월 상황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충격이 더 클 것으로 전망된다. 나이지리아의 올라왈레 에둔 재무·경제장관은 “현재 위기는 가장 취약한 국가들에 가장 큰 타격을 주고 있다”며 IMF와 세계은행의 추가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금융 비용 증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저소득국의 부담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미국 정부는 상대적으로 낙관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전쟁은 결국 끝날 것”이라며 에너지 가격 급등도 시간이 지나면 안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글로벌 불균형 문제를 주요 리스크로 지목하며 IMF의 역할 강화를 주문했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는 이러한 경고와 달리 낙관론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증시는 중동 긴장 완화 기대와 기업 실적 호조, 인공지능(AI) 투자 확대 기대 등을 반영하며 사상 최고치 부근까지 상승했다.
이에 대해 알렉시스 크로우 PwC 미국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시장 참여자들이 전쟁이 공급망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며 “상황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협회(CFR)의 레베카 패터슨 선임연구원은 이번 충격이 코로나19와 유사한 ‘순차 확산’ 형태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아시아에서 시작된 충격이 유럽으로 확산됐고, 미국도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며 “이는 연쇄적 충격(rolling contagion)”이라고 설명했다.
라자드의 피에르 카이유토 공동자문 대표는 “경제·금융·사회적 회복력은 무한하지 않다”며 “글로벌 경제가 어느 시점에서 한계에 도달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