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파올로 잠폴리 특사 (사진=잠폴리 SNS)
1990년대 후반 뉴욕, 잠폴리는 사교계와 패션 업계를 누비는 이탈리아 출신 모델 에이전트였다. 이탈리아 철강·철도 가문 출신으로 피아트 창업주 아녤리 가문과도 먼 인연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그를 유명하게 만든 건 가문의 배경이 아니었다.
2001년 미국 유명 잡지 배니티 페어는 약 3000단어짜리 프로필 기사에서 그의 뉴욕포스트 가십 칼럼 ‘페이지 식스’ 등장 빈도가 패리스 힐튼에게만 뒤진다고 묘사하며 조롱과 경탄을 반반 섞었다.
그리고 1998년, 패션위크 파티에서 그는 한 젊은 슬로베니아 출신 모델을 도널드 트럼프에게 소개했다. 훗날 미국 퍼스트레이디가 된 멜라니아 크나우스다. 잠폴리는 이 인연을 자신의 최대 자산으로 삼았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그 자산은 본격적으로 현금화됐다.
◇“보잉을 사라”…접근권이 곧 외교력
지금 잠폴리의 명함에는 ‘미국 특사’가 찍혀 있다. 지난주에는 JD 밴스 부통령과 나란히 헝가리를 방문해 원자력 에너지 판매 계약을 성사시켰다. 몇 달 전에는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에서 보잉 항공기 수주를 밀어붙였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고 노골적이다. 그는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대통령에 대한 접근권을 원한다”면서 “그러면 나는 ‘보잉을 사라. 대통령을 기쁘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라고 답한다”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방문에 대해 그는 더 극적으로 말했다. 현지 관리들이 처음 40억 달러 규모를 제시했지만 자신이 밀어붙여 결국 200억 달러(약 29조5000억원)에, 그것도 불과 20분만에 합의를 이끌어 냈다고 했다.
그러나 실제 발표된 계약 규모는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우즈베키스탄 항공이 22대의 항공기를 80억 달러 이상에 구매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미 국무부도 FT에 “대통령이 2025년 9월 5일 미르지요예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직접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전했다. 잠폴리의 자기 서사와 정부 공식 발표가 엇갈리는 대목이다.
지난주 JD 밴스(가운데) 미국 부통령의 헝가리 방문에 동행한 파올로 잠폴리(왼쪽) 특사. (사진=잠폴리 SNS)
잠폴리 주변의 잡음은 외교적 성과만큼이나 화려하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그가 동거녀였던 브라질 국적자 아만다 운가로와의 양육권 분쟁 과정에서 미국 이민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으며 운가로가 결국 추방됐다고 보도했다. 백악관 인맥을 사적 분쟁에 동원했다는 의혹이다.
멜라니아 트럼프가 기습 기자회견을 열어 미성년자 성착취범 고(故) 제프리 엡스타인과 무관하다고 밝힌 직후, 운가로가 엑스(X·옛 트위터)에 멜라니아와 엡스타인의 연관성을 암시하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한 것도 이 맥락에서 주목받았다.
잠폴리는 특유의 방식으로 흘려버렸다. 그는 “엡스타인 파일에 ‘포주가 필요하면 파올로에게 전화해라’거나 ‘파올로는 그 섬에 있었다’ 같은 내용이 드러난 건 아니잖느냐”고 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다. 최근엔 루마니아 수도 부쿠레슈티에 미국 독립 250주년을 기념하는 ‘도널드 J. 트럼프 파크’ 개장 계약도 따냈다고 자랑했다.
◇외교인가 영업인가…허물어지는 경계
FT는 잠폴리 현상이 미국 외교의 전통적 경계를 허물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가 행위와 영업 행위, 공직과 사적 네트워크, 외교와 거래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충성심과 성과를 과정보다 앞세우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잠폴리 같은 인물의 활동 반경은 오히려 넓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 방식이 실질적 국익 증진으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사적 이해와 공적 책무가 뒤엉킨 구조적 공백을 키우는지다. FT는 이 같은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채 잠폴리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