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피 안흘려”…우크라 전장은 이미 미래 전쟁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20일, 오후 03:30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두 명의 러시아 병사가 두 손을 든 채 상대의 명령을 조심스럽게 따르고 있다. 흔한 항복 장면이지만 이들의 눈앞에는 서 있는 건 인간 병사가 아니다. 우크라이나 병사가 수마일 떨어진 안전지대에서 원격으로 조종하고 있는 지상 로봇과 드론이다. 우크라이나 제3독립돌격여단 소속 지상 로봇 타격 부대 ‘NC13’의 지휘관 미콜라 ‘마카르’ 진케비치는 지난해 여름 보병 투입 없이 오직 지상 로봇과 드론만으로 러시아군 진지를 습격해 포로까지 생포한 역사상 첫 사례였다며 “단 한 발의 총성도 쏘지 않고 거점을 점령했다”고 강조했다.

CNN방송은 19일(현지시간) “그동안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전쟁의 모습이 이미 현실이 됐다”고 보도했다.

12,7mm 브라우닝 기관총으로 무장한 우크라이나군의 전투용 지상 로봇. (사진=AFP)
◇총성 한발 없이 러軍 생포…전장 바꾸는 지상 로봇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5년째에 접어든 가운데, 우크라이나군은 바퀴나 궤도로 움직이는 원격 조종 차량인 지상 드론과 지상 로봇 체계를 본격 실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상병 후송과 보급에 주로 사용했으나, 이제는 전투 돌격 임무에도 투입된다. 동시에 전선 상공은 보병에게 치명적인 드론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지상 드론은 대형 군용 차량보다 탐지·요격이 까다롭다. 공중 드론과 달리 악천후에도 움직이고 더 많은 화물을 나른다. 내구성과 배터리 수명도 길다. 우크라이나 제3군단은 지난해 말 기관총을 장착한 지상 로봇 1대가 가벼운 정비와 이틀마다 한 번의 충전만으로 러시아군의 진격을 45일간 막아냈다고 밝혔다.

진케비치는 “우리는 병력 수에선 적을 결코 앞설 수 없다. 그래서 기술로 우위를 만들어야 한다”며 올해 목표는 보병의 3분의 1을 드론과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최근 평가에서 우크라이나의 드론 우위가 러시아의 진격을 둔화시키고 우크라이나의 반격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4일 “지난 3개월간 드론과 로봇이 2만 2000건이 넘는 임무를 단독 수행했다”며 “로봇이 가장 위험한 곳에 들어가면서 2만 2000번 이상 목숨을 구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지상전 전문가 로버트 톨라스트는 “이 로봇들이 전쟁의 미래인지와 관련해 격렬한 논쟁을 촉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상 드론이 점령지 유지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지만 “사상자 후송, 위험한 보급, 지뢰 제거, 그리고 점차 전투에서 병사들의 목숨을 정기적으로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보병 대신 드론·로봇…우크라 전장 실험 가속

이제 우크라이나는 드론·로봇 체계의 세계적 선두주자가 됐다. 드라이브를 건 인물은 올해 1월 국방장관에 임명된 미하일로 페도로우다. 디지털 전환 장관 시절 드론전 프로젝트를 주도했던 그는 취임 직후 ‘러시아를 평화로 몰아넣는’ 전쟁 계획을 내놓았다. 모든 공중 위협을 실시간 식별해 미사일과 드론의 95% 이상을 요격하고, 전선을 따라 15~20㎞ 깊이의 ‘킬존’(kill zone)을 만들어 드론과 로봇이 쉼 없이 작동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이다.

핵심은 기술과 데이터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이미 약 1000개 조가 이 통합 프로그램에 투입됐으며, 수백개 기업이 정부 주도 드론 개발·생산 사업 수십건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페도로우 장관은 최근 “지상 로봇 체계가 결국 전선 물류 전체를 떠맡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진케비치는 “러시아는 아직은 뒤처져 있지만 그들 역시 전진하고 있다”며 “전장에서 결정적인 것은 누가 기술을 발명했는지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누가 그것을 대규모로 확장해 냈는가이다”라고 강조했다.

드론을 운용하는 우크라이나 병사의 모습. (사진=AFP)
◇400만달러 vs 5만달러…드론이 바꾼 전쟁, 중동서도 주목

드론 우위가 전쟁 전체의 승부를 가르지는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축적된 노하우는 유럽 밖에서 빠르게 주목받고 있다. 중동이 대표적이다. 재래식 전력 증강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온 국가들은 이란 분쟁 이후 5만달러짜리 드론 한 대를 떨어뜨리기 위해 400만달러짜리 미사일을 써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우크라이나는 제한된 자원 탓에 더 싸고 효율적인 드론 대응법을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카타르·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튀르키예·시리아를 직접 찾아 이 경험을 지원과 맞바꾸겠다고 제안했다. 걸프 국가들은 우크라이나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대공방어 미사일을 쥐고 있다. 그는 여러 유럽 국가와도 신규 협정을 잇달아 체결했다.

드론과 로봇 다음 단계로는 중동 전쟁에서도 화제가 된 인공지능(AI)이 지목됐다. 우크라이나는 실제 전장 데이터를 활용해 무인체계용 AI 모델을 개발·훈련하고 있다. 다만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진케비치는 “최종 결정은 반드시 인간이 내려야 한다”며 “무기를 AI에 맡기겠는가. 아군과 적군을 구분한다고 어떻게 장담하나. 오작동이 없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하나”라고 반문했다.

보병 출신으로 돌격조 지휘관을 거쳐 지금은 로봇을 지휘하는 그는 “2022년에 지금의 내가 하는 말을 들었다면 미친 사람 소리라고 했을 것이다. 전부 공상과학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 목숨에는 값을 매길 수 없지만 로봇은 피를 흘리지 않는다. 지상 로봇 체계를 훨씬 빠르게, 훨씬 큰 규모로 개발해 전장에서 쓰는 글로벌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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