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사진=로이터)
◇“걱정 말라”더니 4개월만에 말 바꿔
가장 극적인 반전은 뱅크오브아메리카에서 나왔다. 브라이언 모이니한 최고경영자(CEO)는 불과 4개월 전 TV 인터뷰에서 21만명의 자사 직원들을 향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AI는 여러분의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지난주 1분기 실적 발표 자리에서 그는 “회사가 업무를 제거하고 기술을 적용해 자연감소 방식으로 1000개의 일자리를 줄인 것이 86억 달러 순이익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그가 반복적으로 특정한 그 기술은 AI였다. 그러면서 “AI는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으로 데려다준다”고 말했다.
◇“생산성 여정”이라는 이름의 2만명 감원
씨티는 더 노골적이다. 한 임원은 지난주 애널리스트들에게 회사의 ‘생산성 및 효율화 여정’을 통해 직원 2만명을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씨티는 앤스로픽,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의 AI 소프트웨어를 도입해 법률 문서 자동 해독, 계좌 개설 승인, 거래 청구서 발송, 고객 데이터 정리 등의 업무를 자동화하고 있다. 은행 임원들의 공개 발언과 내부 사정에 정통한 복수의 관계자가 전한 내용이다.
더 상징적인 것은 감원 대상이다. 이번 감원에는 씨티의 ‘AI 챔피언스 앤드 액셀러레이터스’ 프로그램 참여자들, 즉 사내에서 동료들에게 AI 도입을 독려하는 역할을 맡았던 직원들 상당수가 포함됐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AI를 전파하던 이들이 AI 때문에 잘린 셈이다.
◇“말하기 어렵지만” 웰스파고 CEO의 솔직함
대부분의 은행 최고경영자들이 ‘AI발 감원’이라는 표현을 피하는 가운데, 웰스파고의 찰리 샤프 CEO는 예외적으로 솔직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이것들은 모두 인간이 해왔던 것보다 AI로 훨씬, 훨씬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다른 은행장들이 “앞으로 직원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서 두려워한다”고도 했다.
웰스파고에서 AI는 이미 잠재적 차입자의 신용도를 즉석에서 평가하는 메모를 작성하고, 기업 인수합병(M&A)을 권유하는 프레젠테이션 자료(피치북)를 만들고, 신용카드 고객의 전화를 자동으로 응대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해당 은행은 지난 1년간 매 분기 감원을 이어왔다.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 표지판. (사진=AFP)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부유층 고객 대상 금융 어드바이저로 유명한 모건스탠리의 자산관리 부문 책임자는 지난 2월 AI 도구를 두고 “돈을 관리하는 ‘아이언맨’의 자비스(JARVIS) 같은 것”이라고 극찬했다. AI가 어드바이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한다는 낙관론이다.
반면 캐나다 2위 은행인 TD은행의 은행 전문 애널리스트 스티븐 알렉소풀로스는 지난 1월 102쪽 분량의 보고서에서 AI를 영화 ‘M3GAN’의 AI 인형에 빗댔다. 처음에는 친구였다가 결국 ‘맞서 싸워야 하는 존재’가 된다는 얘기다. 그의 시나리오는 AI가 초기에는 은행에 이익 급증을 안겨주지만, 곧 고객들이 AI를 활용해 더 높은 금리의 예금과 더 싼 대출을 찾게 되면서 은행의 수익이 급감하고, 결국 대규모 해고와 은행 폐업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알렉소풀로스는 최근 TD은행을 떠났고, 그의 후임자는 없다고 한다. 그는 링크드인에 25년 넘는 은행 애널리스트 생활을 마치고 새 커리어를 시작한다고 썼다. 그가 선택한 분야는 AI 연구였다.
◇월가의 일자리 감소, 금융 허브 넘어 전국으로
최근 일련의 일자리 축소는 월가 고소득 전문직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 몇년간 은행들이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분산한 내륙 도시들에도 감원의 파고가 밀어닥치고 있다. 씨티의 이달 감원에는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애리조나주 투손, 플로리다주 탬파 소재 직원들이 포함됐다.
우리 금융권도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KB·신한·하나·우리 등 국내 주요 금융그룹들이 디지털 전환과 AI 도입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는 가운데, 월가의 실적과 인력 재편 소식은 AI가 실제로 어떤 규모와 속도로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 시민들이 월스트리트 지하철역 표지판을 지나가고 있다. (사진=AF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