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첫 번째 관문은 독일 정부다. 로이터에 따르면 독일 연방정부와 국책 금융기관 KfW는 도이체텔레콤 지분을 각각 14%씩, 합산 약 28% 보유하고 있다. 단순한 주주가 아니다. 거래 성사 여부를 사실상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 지위다. 합병이 독일 정부의 이해와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점이 문제다. 합병 법인의 지주회사 소재지는 독일 외 유럽 국가로 설정될 가능성이 크다. 독일로서는 자국 기간통신사의 법적 거점이 해외로 이전되고, 합병 법인에서의 지분율도 현재보다 희석된다. 자국 통신 인프라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내려놓는 셈이다. 양사는 독일 내 주요 사업 거점 유지와 고용 보장 같은 구체적인 약속을 패키지로 제시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 관문은 구조적으로 더 복잡하다. 통신사 합병은 미국에서만 3개의 독립 기관이 심사한다. 연방통신위원회(FCC)는 공익 부합 여부를, 법무부(DOJ)는 경쟁 제한 여부를 각각 심사하며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국가 안보 관점에서 별도 심사를 진행한다. 도이체텔레콤이 이 과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2019년 T모바일·스프린트 합병 당시에도 같은 절차를 거쳤다. 당시 도이체텔레콤이 독일 기업이라는 점이 CFIUS 심사의 쟁점이었으나 미국·독일 간 우호적 안보 관계와 중국 화웨이 장비 사용 중단 약속을 조건으로 승인을 얻어냈다. 이번 합병은 규모와 성격이 다르다. 독일 자본이 미국 최대 통신사를 사실상 완전히 품는 구조로, CFIUS가 통신을 핵심 인프라로 분류해 외국인 지배 여부를 중점 심사한다는 점에서 더 높은 장벽이 예상된다.
◇그룹 재편 등 도이체텔레콤 노림수 주목
흥미로운 것은 트럼프 행정부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린다는 점이다. 미·독 갈등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와 동시에,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부 관계자들은 대형 M&A에 우호적인 트럼프 행정부 재임 중인 지금이 거래를 성사시킬 적기라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성향이 역설적으로 이번 합병의 우호적 배경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도이체텔레콤의 전략적 노림수에 주목한다. 뉴스트리트리서치의 제임스 랫저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번 합병은 도이체텔레콤이 미국에서의 미래 M&A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는 동시에, 앞으로 누군가 T모바일을 인수하려 해도 더 어렵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PP포사이트의 파올로 페스카토레 애널리스트도 로이터를 통해 “가장 강한 자산인 T모바일을 중심으로 그룹 전체를 재편하려는 전략”이라고 평가했다.
유럽에서는 이번 합병에 우호적인 규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혁신·투자·역내 시장 회복력 등을 합병 심사의 주요 고려 요소로 포함하는 방향으로 기업결합 가이드라인 개정을 추진 중이다. 미국·중국 경쟁사에 맞설 수 있는 ‘유럽 챔피언’ 기업의 탄생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개정 초안은 이르면 내달 공개할 예정이나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최종 채택은 내년 4분기로 예상돼 이번 합병 심사에 즉각 적용되기는 어렵다. 결국 이 역대 최대급 합병은 기업 논리를 넘어 정치적 타협까지 이뤄져야 가능한 거래라는 평가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