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성비 따지다 공급 막힐라…전쟁이 '상수'가 된 경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28일, 오후 07:40

[이데일리 성주원 김겨레 기자] 이란 전쟁이 발발한 이후 주요국 대사관들은 국내 주요 기관에 연락을 취했다. 호주는 “한국이 정제유 수출을 막으면 우리가 직격탄을 맞는다”고 했다. 캐나다는 “우리 오일샌드도 봐달라”고 했다. 카자흐스탄은 “우리 원유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공급 협력을 타진했다. 세계가 우리나라의 문을 두드린 것은 단순한 외교 신호가 아니다. 지난 반세기 넘게 세계 경제를 떠받쳐온 질서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방현지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이번 충격은 기존 지정학적 리스크와 질적으로 다르다”며 “과거에는 가격 쇼크만 왔는데 이번에는 글로벌 해상 원유 물동량의 약 20%가 동시에 영향권에 들어가면서 물량 충격과 가격 충격이 함께 왔다”고 진단했다. 그는 “사태가 길어질수록 대체 공급선 확보 비용, 물류 재편 비용, 기업 재고 전략 변화가 결합해야 하는데 위기 종료 이후에도 이 비용 구조가 상당 기간 지속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달라스 연방준비은행 연구진은 이번 사태를 “1973년 오일쇼크의 2~3배에 달하는 역사상 최대 지정학적 공급 충격”으로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이란 전쟁이 글로벌 공급망을 JIT(Just-in-Time·적기공급)에서 JIC(Just-in-Case·사전비축)로 전환했다고 지적했다. 에너지·투자의 기준도 ‘효율’에서 ‘안보’로 이동했다. 현대경제연구원장을 지낸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코로나19 등 공급망 차질이 자주 발생하는 환경이 됐으니 이젠 가성비만 생각할 수가 없다”며 “예전 같으면 JIT지만 이제 JIC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복원력, 즉 회복탄력성이 가장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동 에너지 수입이 단기에 복구될 것 같지 않고, 장기적으로는 늘 이런 위험이 있으니 수입 다변화로 갈 수밖에 없다”며 “데이터센터 때문에 대규모 전력이 매우 중요해진 시대에 원전 수출할 정도의 기술력이 있으니 원자력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신원규 한국경제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JIT·JIC를 넘어 ‘JIV(Just-in-Value·부가가치 우선 공급)’ 개념을 제시했다. 신 위원은 “JIT·JIC·JIV는 결국 모두 기업의 ‘생존’ 공식이다”며 “통상 환경이 바뀔 때마다 공식도 바뀐다. 지금은 리스크 자체가 비용이 된 시대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안보를 재설계하는 움직임은 비단 한국만이 아니다. 세계는 이미 호르무즈 이후를 설계하기 시작했다. 걸프국들은 1800㎞ 송유관 신규 건설을 검토 중이다. 효율의 시대가 끝남과 동시에 안보가 비용을 지배하고 부가가치가 생존의 기준이 되는 시대가 개막했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최선의 시나리오에서도 이전 상태로의 복귀는 없다”고 지적했다.

생존을 위한 대응전략에 따라 위기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김혁 한국외대 페르시아어·이란학과 교수는 “대이란 제재가 해제된다면 이란이 국제사회의 주요 시장으로 부상할 수 있다”며 “삼성전자, LG전자 등 한국 기업이 과거 이란 가전 시장에서 75~90%의 점유율을 가졌던 만큼 전쟁 이후 복구·재건 과정에서 한국 기업의 기회가 열릴 것이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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