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여진 맥스캐피탈 CEO
과거 중국은 공자학원이라는 국가 주도의 하향식 채널을 통해 자국 문화와 언어를 전파하려 했다. 한때 미국에서만 100개 넘게 운영할 만큼 빠르게 확산했지만 이후 가치 충돌과 정치적 논란 속에서 상당수 폐쇄되며 명맥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 과정은 분명한 한계를 드러냈다. 이념을 전면에 내세운 방식은 공감을 얻기보다 경계를 불러왔다. 중국은 이제 방향을 바꾸고 있다. 미식을 포함한 감각적 경험을 앞세워 외교의 접점을 설명이 아닌 체험의 영역으로 옮기고 있다.
이번 행사의 정점은 스페인 미슐랭 3스타 ‘다이버엑소’ 셰프 다비즈 무뇨스의 발언이었다. 그가 “중식은 내게 단순한 영감이 아니라 경이로움 그 자체”라고 말하는 순간 온라인 세션에 수많은 중국 팬들이 몰려드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는 자국 문화의 우월성을 스스로 외치기보다 글로벌 아이콘의 입을 통해 그 권위를 입증받으려는 ‘제삼자 보증 전략’의 전형적인 사례다. 외부의 인정과 칭송을 통해 설득력을 확보하는 방식이자 체제의 자기 증명 욕구를 더 세련된 방식으로 충족시키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어 열린 포럼에는 무뇨스 외에도 런던 ‘에이웡’의 앤드루 웡, 뉴욕 ‘아토믹스’의 박정현 셰프가 자리를 함께했다. 여기에 ‘세계 50 베스트 레스토랑’ 관계자와 텔레그래프, 타틀러 아시아, 워싱턴 포스트, 보그 등 주요 매체의 평론가가 참여해 중국이 설계한 미식 담론에 무게를 더했다. 기술 분야에서 독자적 표준을 세워 ‘차이나 스탠더드’를 구축하려 했듯 미식에서도 서구 중심의 평가 프레임을 넘어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시도가 시작된 것이다. 일대일로가 물리적 인프라의 연결이었다면 미각 실크로드는 음식을 매개로 국제적 거리감을 좁히는 소프트 파워 전략이다.
미식은 시작일 뿐이다. ‘검은 신화: 오공’이 전 세계 게이머를 사로잡고 라부부가 젊은이의 손에 들리는 현상처럼 문화는 논리보다 먼저 감각으로 스며든다. 중국의 문화 전략은 거부감이 낮은 콘텐츠로 취향을 선점한 뒤 그 위에 자국의 기준을 얹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기술 면에서 중국을 앞선다고 여겨왔다. 그러나 딥시크가 챗GPT에 도전하고 중국산 휴머노이드가 빠르게 존재감을 키우는 지금 그 판단은 새로운 검토가 필요하다. 노골적인 선전이 통하지 않는 시대를 인식한 중국은 우리가 먼저 개척했던 취향의 영역으로 조용히 진입하고 있다.
우리가 기존의 성공 방식에 집중하는 사이 게임의 규칙은 이미 바뀌고 있다. 물론 K콘텐츠는 현재 단순한 ‘유행’을 넘어 글로벌 문화의 ‘상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지금의 우위가 영원한 방어막이 될 수는 없다. 문화 경쟁의 승부는 누가 먼저 새로운 감각의 표준을 제시하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중국이 자본과 규모를 앞세워 취향의 판을 설계하는 상황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대체 불가능한 자리다. 경계심을 풀고 안주하는 순간 우리는 그 자리를 내주게 될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