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내정 거절하면 비용 청구" 학생 압박…日, 일자리 넘친다는데 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4월 30일, 오후 01:40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일본에서 취업 알선업체들이 학생들에게 자신이 소개한 기업 외에 다른 기업의 채용절차는 모두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내정을 거절하면 그동안 들어간 채용·연수비용을 청구하겠다고 협박하는 악질적 사례까지 등장하면서 일본 대학들이 학생들에게 주의를 당부하고 나섰다.

(사진=AFP)
◇“취업 내정 거절하면 채용비용 청구”…日 학생 등치는 갑질

30일 일본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도쿄 주오대에는 올해 들어 “내정을 거절하면 지금까지 쓴 채용비용과 연수비를 청구하겠다”거나 “지금 이 자리에서 다른 회사에 채용 절차 사퇴 전화를 걸라”는 식의 압박을 받았다는 학생 상담이 잇따라 접수됐다.

릿쿄대에도 올해에만 비슷한 상담이 10건 이상 들어왔다. “다른 회사 절차를 계속할 거면 내정을 백지화하겠다”고 윽박지르거나, “면접 경험이 필요하다”며 관심도 없는 기업의 면접을 강제로 잡고, 적성검사 후 원치 않는 업종을 권유하는 사례까지 보고됐다.

압박 주체는 기업이 아닌 졸업 예정자들과 기업을 중개해주는 취업 알선업체(에이전트)들이다. 이들은 원래 경력직 이직 시장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신입 채용 시장으로 영역을 넓혔다. 무료로 기업 정보 제공, 자기소개서 첨삭, 면접 대비까지 지원하기 때문에 학생 입장에선 손쉽게 취업을 준비할 수 있다.

◇구인배율 1.66배 만성 구인난…성공보수가 부추긴 압박

알선업체들이 급성장한 배경에는 일본의 만성적 구인난이 있다. 일본 리크루트워크스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올해 봄 졸업한 대졸자 구인배율은 1.66배로, 학생 1명당 일자리가 1.66개 있는 셈이다. 특히 300인 미만 중소기업은 8.98배로 학생 1명을 9개 기업이 두고 다투는 형국이다.

전체 일자리 수(76만 5000개)가 구직 희망 학생 수(46만 1000명)를 30만명 이상 웃돌고 있어서다. 직접 채용으로는 인력을 채우기 어려운 기업들이 수수료를 주고라도 알선업체들에 의존하는 구조가 자리 잡은 것이다. 리크루트 조사에서도 내년 졸업자에 대해 “인재 소개회사를 통해 채용하겠다”고 답한 기업이 18.9%에 달했다.

문제는 알선업체들의 수익 구조다. 졸업 예정 학생들은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업체들은 학생들의 입사가 성사돼야 기업으로부터 소개·중개 보수를 받을 수 있다. 기업 채용에 정통한 인재연구소의 소와 도시미쓰 대표에 따르면 입사 1명당 50만~100만엔(약 511만~1023만원)이 지급된다.

학생이 다른 회사로 가면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구조여서 소개해준 기업이 아닌 곳으로 간 학생들을 상대로 퇴사 압박을 종용하고 있는 것이다. 소와 대표는 “성공 보수형이기 때문에 알선업체들은 학생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잡아두려는 구조에 놓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알선업체들의 협박 또는 압박은 일명 ‘오와하라’라고 불린다. ‘취업활동을 끝내라는 괴롭힘’이라는 뜻이다. 일본의 2015년 신어·유행어 대상 후보로 선정될 만큼 사회 문제로 자리 잡았다.

후생노동성은 “경우에 따라 형법상 협박죄·강요죄, 민법상 불법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내각부의 2024년도 조사에서 “오와하라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9.4%에 달했다. 10명 중 1명 꼴이다.

◇취업 시즌 본격화 앞두고…대학·정부 일제히 경고음

대학들도 본격적인 취업 시즌을 앞두고 경계에 나섰다. 주오대는 지난 3월 “에이전트를 포함한 채용 측이 활동에 든 비용을 학생에게 청구하는 것은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며 부당한 요구를 받으면 내용·일시·담당자를 메모나 녹음으로 남기라고 공지했다.

릿쿄대도 같은 달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주의를 당부했다. 릿쿄대 캐리어센터의 고지마 미도리씨는 “정신적으로 무너지는 학생도 적지 않다. 학생에게 단 한 번뿐인 신졸 취업과 인생을 비틀고 있다는 사실을 에이전트 측이 인식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업계도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일본인재소개사업협회는 2018년 알선업체 20개사가 참여한 가운데 오와하라 금지 지침을 마련했다. 일본 정부도 지난 3월 경제단체에 보낸 문서에서 오와하라를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는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소와 대표는 “취업 준비생은 인생 경험이 짧고 정보도 부족해 손쉬운 에이전트에 의존하기 쉽지만, 에이전트의 고객은 어디까지나 소개처 기업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학생들도 부당한 요구는 단호히 거절해야 하고, 에이전트를 활용하는 기업도 컴플라이언스(준법감시)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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