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바라보는 미국…"트럼프는 쇠퇴의 증상이자 촉진제"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05일, 오후 02:32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 1년을 거치며 ‘미국 쇠퇴론’이 중국 지식인·관료 사회에서 한층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을 쇠퇴의 ‘증상’(symptom)이자 쇠퇴를 가속화하는 ‘촉진제’(accelerant)로 규정하면서도 “쇠퇴 중인 패권국이 가장 위험하다”는 인식 아래 신중한 대응을 고수하고 있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AFP)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4일(현지시간) ‘중국은 미국이 쇠퇴하고 있지만 여전히 유독 위험하다고 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같이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1주년이던 지난 1월 말 왕원 인민대 충양금융연구원장은 동료들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한다’는 풍자조 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미국의 전통적 동맹들을 떠나보내준 점, 중국이 더 신뢰할 만하고 안정적이라는 점을 세계에 보여준 점, 중국에 경제적 압박을 가해 혁신을 촉진해준 점, 무엇보다 미국이 위선적인 ‘제국의 황혼기’에 들어섰음을 입증해준 점”에 사의를 표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왕 원장이 격한 표현을 즐기는 인사이지만 결코 예외적 견해가 아니라고 짚었다. 시진핑 국가주석의 ‘동승서강’(東升西降·동양은 부상하고 서양은 쇠퇴한다) 명제가 이런 흐름을 압축한다.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미국 쇠퇴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마르크스주의적 자본주의 회의론과 결합해 주류로 부상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두 차례 당선은 “미국 민주주의가 혼돈의 행위자를 대통령으로 배출할 만큼 오작동하고 있다”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조너선 친·앨리 매티어스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중국 문헌에 ‘미국 쇠퇴’ 표현이 등장하는 빈도를 집계해 “20년 가까이 일관된 흐름이지만 트럼프 재집권 후 한층 증폭됐다”고 분석했다.

중국 담론에서 반복적으로 거론되는 ‘미국병’은 △경제(금융화·제조업 공동화·국가부채 급증) △군사(세계 경찰 역할의 부담과 한계) △정치(초양극화·합의 붕괴·자기파괴적 포퓰리즘) 세 갈래다.

핵심은 중국이 이런 진단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미국이 비워준 공간을 더 공격적으로 차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일본·캐나다 등 미국 동맹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 대만 인근과 남중국해에서의 군사 행보가 그 예다.

다만 이런 행보는 대체로 ‘회색지대’에 머물러 있으며, 러시아의 영토 강탈만큼 과감하지 않다.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은 진단만큼 행동에 나서지는 않고 있다”고 평가했다.

‘패권 불안’ 개념이 이런 신중함을 설명한다. 중국 학자들은 미국을 “영향력 상실에 극도로 불안해하며 추락 국면에서 폭력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높은 약화된 패권국”으로 규정한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사로잡고, 이란을 폭격하며, 동맹을 조롱하는 행보가 같은 틀로 해석된다. 중국공산당의 외교 사안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필명 ‘중성’(鐘聲)은 지난달 23일 인민일보 논평에서 “미국이 약육강식의 세계로 퇴행하는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썼다.

신중론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축은 ‘쇠퇴는 절대적 손실이 아니다’라는 인식이다. 다웨이 칭화대 교수는 “패권은 힘과는 다르다”며 미국의 국제기구 주도력은 무너졌지만 경제·군사 영향력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라고 짚었다. 왕지스 베이징대 교수도 정치적 양극화가 경제·기술 발전을 제약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미국은 균형을 회복해온 전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결국 중국이 미국을 ‘예측 불가능한 축소된 패권국’으로 보든, ‘인공지능(AI)으로 새 도약을 준비하는 약화된 강국’으로 보든 결론은 같다. 미국을 자극할 무모한 행동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는 초강대국 간 충돌 위험을 줄이는 면에서 안도할 만한 결론”이라면서도 “시 주석은 이달 14~15일 베이징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의 권위에 압도되지도, 미국 군사력 과시에 위축되지도 않을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을 ‘위험으로 가득하지만 쇠퇴할 운명에 처한 약화된 강국의 지도자’로 바라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