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한 척이 5일(현지시간) 카보베르데 프라이아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MV 혼디우스’ 옆에 접근해 있다. 이날 아픈 승객들이 보트를 통해 크루즈선에서 이송됐다. (사진=로이터)
스페인 보건부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유럽연합(EU)의 요청을 받아 “국제법 및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혼디우스호를 수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카보베르데가 자국 내 승객 하선을 허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카나리아제도가 필요한 역량을 갖춘 가장 가까운 지역”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란카나리아 또는 테네리페 중 한 항구에 입항하게 되며, 카보베르데에서 3~4일 항해 거리에 있다.
◇사망자 3명·감염 7건 확인…선내 의사도 위중
WHO에 따르면 현재까지 확인된 사례는 총 7건이다. 사망자 3명, 남아프리카공화국 병원에서 중환자실 치료 중인 영국인 1명, 경미한 증상을 보이는 선내 잔류자 3명이다.
첫 사망자는 네덜란드인 남성(70)으로, 지난 4월 6일부터 발열·두통·복통·설사 등의 증상을 보이다 4월 11일 선상에서 숨졌다. 그의 아내(69)는 4월 24일 영국령 세인트헬레나에서 하선해 남아공 요하네스버그로 이송됐으나 공항에서 쓰러져 4월 26일 병원에서 사망했다. 네덜란드 당국은 사망한 네덜란드 여성에서 한타바이러스를 확인했다.
한 독일인 여성은 폐렴 증상으로 지난 2일 선상에서 숨졌으며, 사인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한타바이러스 의심 사례로 분류됐다.
영국인 승객 한 명은 4월 27일 발병해 현재 요하네스버그 민간 의료시설에서 중환자실 치료를 받고 있으며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고 WHO는 전했다. 영국인과 사망한 네덜란드 여성 두 명의 한타바이러스 감염이 공식 확인됐다.
CNN에 따르면 선박 운항사 오션와이드 익스페디션스(Oceanwide Expeditions)는 선내 의사(네덜란드 국적)가 위중한 상태에 있다고 밝혔으며, 스페인 보건부는 이 의사를 카나리아제도로 긴급 이송하기로 했다. 영국인·네덜란드인 선원 2명도 급성 호흡기 증상을 보여 긴급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아울러 경미한 발열 증상을 보였던 승객 1명은 현재 회복 중이다.
지난 2017년 7월 6일 한타바이러스 감염 의심 환자의 림프절 표본 모습. (사진=로이터)
WHO 전염병·팬데믹 대비 담당 디렉터 마리아 반 케르코브는 스위스 제네바 기자회견에서 “부부나 같은 선실을 공유한 밀접 접촉자 사이에서 인간-인간 전파가 일어나고 있을 수 있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한타바이러스는 통상 감염된 설치류의 소변·배설물·침을 흡입하거나 접촉해 감염되는 바이러스로, 인간 간 전파는 매우 드물다. 그러나 WHO는 남미 칠레·아르헨티나에서 주로 발견되는 ‘안데스 바이러스’ 변종이 이번 감염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안데스 바이러스는 한타바이러스 중 유일하게 제한적 수준의 인간 간 전파가 보고된 유형이다. 바이러스 염기서열 분석 결과가 나오면 이 가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WHO는 기대하고 있다.
반 케르코브 디렉터는 “이 바이러스는 독감이나 코로나19처럼 퍼지는 바이러스가 아니다”라며 일반 대중에 대한 위험은 낮다고 강조했다.
혼디우스호는 지난 3월 말 아르헨티나 최남단 우수아이아를 출발해 남극 반도, 사우스조지아, 트리스탄다쿠냐 등 오지 섬들을 거쳤다. WHO는 네덜란드 부부가 아르헨티나에서 선박에 합류하기 전 이미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부 다른 감염자는 조류 관찰 등 섬 탐방 활동 중 설치류와 접촉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WHO는 덧붙였다. 아르헨티나 당국은 혼디우스호 출항 시 승객 중 증상자가 없었다고 확인했다.
한타바이러스의 잠복기는 노출 후 최대 8주로, 증상이 뒤늦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이번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한타바이러스는 호흡기 증상이 나타난 경우 사망률이 약 38%에 달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로, 현재 특이적 치료제가 없다.
◇카나리아제도 입항 후 역학조사·격리·본국 송환
현재 혼디우스호에는 23개국 국적의 승객과 선원 약 150명이 탑승해 있다. 미국인이 17명 포함됐으며 스페인 국적자도 다수 탑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항해는 1만4000~2만2000유로(약 2400만~3750만원) 수준의 고가 극지 탐험 크루즈로 기획됐다.
스페인 보건부는 혼디우스호가 카나리아제도에 입항하면 유럽질병예방통제센터(ECDC), WHO와 공조해 승객·선원을 전수 검진하고 치료 후 각자의 국적국으로 송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의료 처치 및 이송은 지역 주민 접촉과 의료진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특수 시설과 차량을 활용할 방침이다.
카나리아제도 입항 전 중증 환자 3명은 의료 후송기로 우선 카보베르데에서 후송된다. 오션와이드 익스페디션스에 따르면 2대의 특수 항공기가 카보베르데로 출발했으며, 이들은 네덜란드로 이송될 예정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남미를 출발지로 하는 극지 탐험 크루즈의 검역 체계와 선상 감염병 대응 프로토콜 전반에 대한 재검토 논의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세계보건기구(WHO) 본부 모습. (사진=로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