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상 전문가인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 허브(TSI Hub) 원장(이화여대 명예교수)은 12일 칼럼을 통해 이번 회담의 함의를 분석하며 “한국은 회담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구조적 변화와 지정학적 리스크에 선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일 법무법인 태평양 통상전략혁신허브 원장 (사진=이데일리 김태형 기자)
최 원장은 이번 베이징 회담을 ‘고립된 이벤트’가 아니라 “2025년 10월 부산 미중 정상회담부터 2026년 12월 마이애미 주요 20개국(G20)까지 이어지는 외교 일정의 연속선상”으로 봐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레버리지(지렛대)가 현저히 약화된 상태라고 분석했다. 올해 2월 미 연방대법원이 트럼프의 핵심 관세 조치를 위법으로 판결하면서 대(對)중국 협상의 최강 카드였던 관세가 법적으로 흔들리고 있는 데다, 이란 전쟁 의제가 관세·희토류 협상의 시간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오는 11월 중간선거 전에 경제 안정의 신호를 미국 내에 보여야 한다는 시간적 압박도 안고 있다.
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계산은 더 복잡하고 입체적이라고 최 원장은 봤다. 시진핑은 단기 성과가 급한 트럼프에게 중간선거용 ‘승리 서사’를 제공하는 대신 실리를 챙기는 장기 포석을 깔고 있다는 분석이다. “단기적 성과 압박에 몰린 트럼프와 더 긴 시간을 내다보는 시진핑, 이 비대칭이 베이징 회담의 구조와 성과를 규정한다”는 것이 최 원장의 진단이다.
◇농산물·LNG 구매 약속으로 포장된 비대칭 거래
최 원장은 이번 회담의 핵심 성과가 ‘미국은 관세 고삐를 늦추고, 중국은 자원 빗장을 열어두는’ 비대칭적 거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중국이 미국산 대두와 액화천연가스(LNG)의 대규모 구매를 약속해 트럼프에게 중간선거용 ‘승리 서사’를 제공하는 대신, 무역법 제301조 관세 부과 시점을 늦추거나 범위를 축소하고 희토류 수출통제 유예 연장에 대한 묵인을 얻어내는 구조다.
2020년 1단계 무역합의(Phase 1 Agreement)의 전철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분석에 따르면 당시 중국은 2년간 미국산 제품 2000억 달러(약 298조원) 추가 구매 약속의 58%만 이행하는 데 그쳤다. 지식재산권 보호, 국가보조금 철폐, 강제 기술이전 금지 등 구조적 개혁은 이번에도 의제조차 되기 어렵다는 것이 최 원장의 판단이다. “트럼프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성과가 불확실한 2단계 협상보다는 선거 전에 내세울 수 있는 헤드라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진=로이터)
최 원장이 가장 경계하는 변수는 대만 문제다. 그는 대만 사태를 “모두가 이야기하지만 발생 시 충격은 상상하기조차 어렵기 때문에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고 애써 외면하려는 ‘블랙 엘리펀트’ 리스크”로 규정했다. 블랙 엘리펀트(Black Elephant)는 ‘블랙 스완(Black Swan)’과 ‘방 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를 합성한 개념으로, 발생 가능성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고 심지어 공개적으로 거론도 되지만 막상 현실화됐을 때의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애써 외면하거나 ‘설마 일어나겠어’라고 자위하는 리스크를 의미한다.
시진핑은 이번 회담에서 미국의 대만 무기판매 자제와 ‘하나의 중국’ 원칙 재확인을 요구하는 한편, 트럼프가 대만 독립에 현행 표현인 “지지하지 않는다(does not support)”를 넘어 “반대한다(oppose)”는 표현을 쓰도록 유도하려 할 것으로 최 원장은 내다봤다.
그는 또 “대만에 관한 트럼프의 어떤 모호한 발언도 한국과 일본 등 역내 동맹국들에 즉각적인 안보 함의를 갖는다”고 짚었다. 미국의 안보 우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면 한국과 일본의 독자 핵무장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고, 북한은 국제사회의 시선이 분산된 틈을 이용해 핵 역량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고착화하려 할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인공지능(AI) 시대의 핵심 공급망과 맞닿아 있다는 점도 문제다. 자동차·스마트폰·서버·방위산업 등 TSMC 의존도가 높은 산업군은 대만 공급 위기 시나리오에 선제 대비가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회담 훈풍에 안주 말고, 구조적 변화 읽어야”
최 원장은 한국에 3가지 대응 방향을 제시했다. 첫째, 회담 결과의 지속성을 과신하지 말 것. 회담 직후 훈풍이 불더라도 다음 관세 조치나 기술 규제까지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며, 공급망 다변화와 지정학적 리스크 헤징은 회담 결과와 무관하게 지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 반도체·희토류·배터리 공급망을 재점검할 것. 첨단기술 통제 완화는 기대하기 어렵고, 오히려 추가 수출통제와 중국의 보복적 희토류 제한이 2026년 하반기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마지막은 대만 리스크에 대비하라는 것이다.
최 원장은 “미중 관계는 개별 정상회담의 분위기가 아니라 구조적 경쟁의 논리로 움직인다”며 “대한민국은 눈앞의 전술적 포석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 뒤에 숨겨진 구조적 변화와 지정학적 뇌관을 읽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