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시장에서는 반도체 의제의 초점이 ‘첨단 AI칩’보다는 ‘희토류-반도체 장비’ 거래 쪽으로 이동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경제사절단 명단에서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을 제외하면서 미국이 블랙웰·루빈 등 최첨단 AI칩 문제를 협상 테이블에서 일정 부분 분리하면서 이번 협상 과정에서 중국을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대신 중국이 원하는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 접근과 미국이 원하는 희토류 공급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는 팀 쿡 애플 CEO,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등 주요 기업인이 동행하지만 황 CEO는 초청받지 못했다. 황 CEO는 최근까지 백악관과 의회를 오가며 대중 AI칩 수출 규제 완화를 적극적으로 설득해왔고 트럼프 대통령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온 인물이라는 점에서 시장은 이번 제외를 단순 의전 문제가 아닌 정책적 신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번 방중 명단에서 제외된 것은 미국 정부가 최첨단 AI 반도체 문제만큼은 별도 영역으로 관리하면서 여러 협상의제를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기 위한 카드로 사용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최근 워싱턴 분위기는 AI 반도체 규제와 관련해 빠르게 강경해지고 있다. 미국 의회에서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칩인 블랙웰)의 중국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고 기존 H200 칩의 대중 수출 허가에 대해서도 의회 감독 권한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황 CEO 역시 최첨단 AI칩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와 비슷한 뜻을 나타내 왔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미국이 AI 패권 경쟁의 핵심인 최첨단 AI칩은 전략자산으로 관리하면서도 공급망과 제조업 분야에서는 중국과 일정 부분 협상 여지를 열어둘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실제 이번 트럼프 방중 경제사절단 역시 엔비디아보다는 보잉, 애플, 테슬라, 퀄컴 등 중국 시장 노출도가 큰 제조업·소비재 중심 기업으로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이 주목하는 카드가 희토류와 반도체 제조장비다. 글로벌 거시경제 리서치업체 가브칼리서치는 “미국은 중국 의존도가 높은 희토류 공급망 안정이 필요하고 중국은 첨단 반도체 제조장비 접근 완화를 원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으로 현재 네덜란드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미국 주도의 수출 규제로 중국 판매를 제한하고 있다. EUV는 엔비디아 GPU와 AI 가속기 등 첨단 시스템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핵심 장비다. 중국으로서는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기술이다. 반면 미국은 희토류 공급망 안정이 절실하다. 중국은 지난해 미국의 첨단기술 수출 통제 강화에 대응해 희토류와 영구자석 수출 제한을 강화했고 이는 미국 전기차와 방산, 첨단 제조업 공급망 전반에 충격을 줬다. 특히 전기차 모터와 반도체 장비, 군수산업에는 중국산 희토류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가브칼리서치는 “희토류와 ASML 노광장비를 맞바꾸는 거래를 성사한다면 장기적으로 반도체 가격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중국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 확대되면 TSMC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의 가격 결정력이 약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AI 반도체 랠리는 엔비디아 GPU와 첨단 AI칩 공급 부족이 전체 AI 인프라 투자 사이클을 끌어올리는 구조다. 중국의 첨단 로직 반도체 생산능력이 확대한다면 GPU와 AI 가속기 공급 부족 현상이 완화하고 이는 장기적으로 HBM(고대역폭메모리) 등 AI 메모리를 포함한 반도체 밸류체인 전반의 가격 협상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도 “이번 미·중 정상회담이 첨단 AI칩 거래 자체보다는 희토류 공급과 제조업 거래, 무역휴전 연장 등을 중심으로 한 ‘관리형 무역(managed trade)’ 성격에 가까울 것이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