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법원 “낙태약 우편처방 허용 유지”…보수 대법관도 등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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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2026년 5월 15일, 오전 10:33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연방대법원이 먹는 낙태약 ‘미페프리스톤’을 의사 대면 진료 없이 환자에게 우편으로 보낼 수 있도록 하는 현행 규정을 유지하기로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임명한 보수 대법관 3명이 반대표를 던지지 않으면서, 2022년 ‘로 대 웨이드’ 판결 폐기 이후 들끓던 낙태 금지 흐름에 사실상 제동이 걸린 셈이다. 판결 폐기를 주도했던 새뮤얼 알리토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통해 “음모”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사진=AFP)
1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 대법원은 이날 긴급 사건 처리 절차를 통해 짧은 명령을 내고, 낙태약 우편 처방을 금지한 하급심 결정의 효력을 무기한 보류한다고 밝혔다. 본안 소송이 하급심에서 진행되는 동안 우편 처방을 그대로 허용하겠다는 의미다.

미페프리스톤은 임신 초기 약물 낙태에 가장 널리 쓰이는 약이다. 2022년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은 ‘돕스 대 잭슨 여성보건기구 판결’(돕스 판결)을 내놓으면서 12개 이상 주(州)정부가 낙태를 금지했지만, 다른 주에서 처방받아 우편으로 받아보는 우회로가 사실상 합법화하며 약물 낙태는 되레 확산했다. 이에 보수 진영은 우편 처방 자체를 막아야 한다며 압박해왔다.

이번 사건의 발단은 지난 1일 제5연방항소법원이 미페프리스톤의 원격 진료 처방과 우편 발송을 금지한 결정이었다. 항소법원은 식품의약국(FDA)이 조 바이든 전 행정부 시절 우편 처방을 허용한 것이 결함 있는 데이터에 근거했다며 루이지애나주의 손을 들어줬다. 이에 미페프리스톤 제조사들이 대법원에 긴급 구제를 신청했고, 알리토 대법관이 일시 정지 명령을 내려 검토 시간을 벌게 된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표결 구도다. 미 대법원은 보수 6명 대 진보 3명 구도다. 2022년 돕스 판결을 함께 쓴 보수 대법관 5명 중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은 이번 결정에 어떤 반대 의견도 등록하지 않았다. 토마스와 알리토 대법관만 반대한 셈으로, 보수 진영 안에서도 우편 처방 차단까지는 무리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알리토 대법관은 6쪽짜리 반대의견에서 작심한 듯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일부 민주당 우세 주들이 낙태 금지 주로 약을 발송하는 의료진을 보호하는 이른바 ‘쉴드법’을 시행하고 있다며 “연방 정부가 2021년과 2023년 우편 낙태를 용이하게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이런 음모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클래런스 토마스 대법관은 1873년 제정된 옛 연방법 ‘콤스톡법’을 꺼내 들었다. 외설물·낙태 도구의 우편 발송을 범죄로 규정한 152년 전 법이다. 그는 “제조사들이 범죄 행위에 따른 손실 이익을 근거로 법원 명령의 집행 정지를 받을 자격은 없다”고 주장했다. 낙태 반대 진영은 트럼프 행정부에 콤스톡법을 활용해 낙태약 공급자를 처벌할 것을 거듭 촉구해왔지만 행정부는 응하지 않고 있다.

낙태 건수는 로 판결 폐기 이후 오히려 늘었다. 가족계획협회(Society of Family Planning)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내 낙태 약 110만건 중 30만건이 원격 진료를 통해 이뤄졌다. 전년 대비 25% 증가한 수치다. 12개 이상 주가 낙태를 금지했지만 우편 처방이 우회로 역할을 한 결과다.

제조사 댄코래보러토리스는 대법원 결정에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미국인들이 의존하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이 계속 공급될 수 있게 됐다”며 환영했다.

반면 리즈 머릴 루이지애나주 법무장관은 “의학적으로 윤리적인 관행으로의 상식적 회귀를 대법원이 막아선 것은 충격적”이라며 “FDA 규정과의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FDA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미페프리스톤 안전성 검토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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