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 '상징은 풍부, 실질은 빈약'…"中이 더 많이 가져갔다"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17일, 오후 06:05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14~15일(현지시간) 베이징 정상회담이 마무리된 가운데, 전문가들은 “상징은 풍부했지만 실질은 빈약했다”고 평가하며 “협상 주도권은 중국이 쥐었다”고 입을 모았다. 대만·반도체·희토류 등 핵심 쟁점에서 실질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오는 9월 24일 시 주석의 워싱턴 방문이 실질 협상의 무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갑은 중국…트럼프가 달려왔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의 주도권이 중국에 있었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김흥규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중정책연구소장)는 “중국이 갑이었고 트럼프가 급히 달려왔다”며 “미국 대통령이 단 한 나라만을 방문하기 위해 이렇게 움직인 것은, 특히 중국을 방문한 것은 28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란 전쟁과 11월 중간선거라는 두 가지 압박이 트럼프를 베이징으로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복수의 전직 미국 고위 관리도 “이번 회담의 가장 놀라운 점은 트럼프가 특히 중서부 지역에서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명확한 경제적 합의 패키지가 없었다는 것”이라며 같은 맥락의 분석을 내놨다. 외교부 경제안보외교 자문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낸 박효민 법무법인 지평 글로벌리스크대응센터 부센터장(변호사)도 “트럼프 대통령은 ‘딜’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중국은 더 유리한 포지션에서 회담에 임했다”며 “트럼프 1기와 2기 사이에 미중 협상의 권력 구조 자체가 바뀌었다”고 했다.

중국 경제 전문가인 찐링 전 KB증권 연구위원은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이 얻은 것은 국가발전·국제질서와 직결된 전략적 성과인 반면 미국이 얻은 것은 전술적 차원에도 못 미치는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번 회담의 가장 주목할 변화는 중국이 미중 관계의 새 프레임으로 ‘건설적 전략적 안정(constructive strategic stability)’을 제시한 것이다.

한 전직 미국 고위 관리는 “이런 프레임은 보통 함정”이라며 “중국이 이 프레임을 내세우는 것은 미국을 묶어두고 관계의 조건을 중국이 정의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전직 미국 고위 관리는 “중국이 제시한 프레임에서 G2(주요 2개국)의 희미한 냄새가 난다”며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이 귀국길 에어포스원 인터뷰에서 이번 회담을 ‘G2’라고 자발적으로 호명했다”고 지적했다. 시진핑이 추구한 ‘대등한 지위’ 프레이밍에 미국 대통령 본인이 동조한 셈이라는 평가다.

베이징 소재 중국 로펌에서 활동 중인 박재영 법무법인 디엘지 파트너 변호사는 “중국은 회담 자체와 강경 발언을 통해 자국민에게 미국과 대등한 G2의 면모를 보였고, 미국은 이란 핵 보유 반대 공통 인식과 다소 조정된 시장개방 신호를 챙겼다”고 분석했다.

[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알파벳 수프’ 의제들, B는 일부 진전 T는 실망

이번 회담 전 워싱턴 정책가들 사이에서는 보잉(Boeing)·쇠고기(Beef)·콩(Beans)·무역위원회(Board of Trade)·투자위원회(Board of Investment) 등 이른바 ‘B’ 의제와 관세(Tariffs)·대만(Taiwan)·기술(Tech)·이란(Tehran) 등 ‘T’ 의제로 나눠 성과를 가늠하는 분석 틀이 통용됐다. 결과는 B 쪽에서는 ‘일부 진전’, T 쪽에서는 ‘대부분 실망’이었다.

워싱턴 소재 한 애널리스트는 “보잉은 약 200대 수준으로 예상보다 작은 계약이었고 트럼프는 잘 되면 150대가 늘어날 수 있다고 시사했다”며 “수출 통제는 주요 논의 주제가 되지 못했고 관세 휴전 연장도 구체적 합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 교수는 “중국이 얼마만큼 시장을 개방하고 물건을 살지는 봐야 하지만 트럼프가 원래 절대 주고 싶지 않았던 반도체·하이테크에서 젠슨 황을 불러들여 물꼬를 텄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대만 문제는 이번 회담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었다. 시진핑은 회담 서두에 대만 독립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가장 강하게 천명했다.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미국의 대만 정책은 이번 회담 이후에도 변한 게 없다”고 확인하는 수준에서 마무리됐다.

민정훈 교수는 “트럼프가 시진핑의 기를 살려주고 참모가 뒤에서 미국 국내 여론을 달래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며 “체면은 살려준 셈”이라고 분석했다. 한 전직 미국 고위 관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대만에 대해 어떤 발언을 할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찐링 전 연구위원은 “지금이 미국에게 대만으로 거래하는 가장 수지가 맞는 시점”이라고 봤다. 시간이 흐를수록 중국 국력이 강해지면 대만 카드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트럼프가 대만 문제를 협상 레버리지로 적극 활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오는 9월 24일로 확정된 시진핑의 워싱턴 방문이 이번에 마무리되지 못한 의제들의 실질 협상 무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전직 미국 고위 관리는 “중국이 이렇게 이른 시점에 이 정도 확약을 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며 “이번에 도달하지 못한 합의들을 마무리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엔 명암 공존…반도체 경쟁 가속 우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이번 회담 결과에 명암이 교차한다는 평가다. 우선, 호르무즈 해협 안정화 가능성은 긍정적이다. 김흥규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충돌로 가면 호르무즈 등에서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는데 일단 안정화된 것은 큰 축복”이라고 했다.

반면 중국 기업의 기술 경쟁력 강화는 우려 요인이다. 김 교수는 “엔비디아 칩이 중국에 제공되기 시작하면 삼성전자(005930)나 SK하이닉스(000660) 입장에서 부담”이라고 했다. 박효민 부센터장은 “희토류 수출통제, 반도체·인공지능(AI) 칩, 대만 무기판매의 세 영역이 어느 쪽 발표문에도 명시 합의가 없는 만큼 가장 빠른 시일 내 갈등 재점화 가능성이 있는 의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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