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채권시장이 연준보다 먼저 긴축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17일, 오후 06:57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채권시장이 사실상 중앙은행을 대신해 먼저 긴축에 나서고 있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재확산 우려 속에 미국 장기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시장에서는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다음 행보로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기 시작했다. 케빈 워시 차기 연준 의장이 연준을 넘겨받게 되면서 ‘워시 체제’의 정책 선택지도 빠르게 좁아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케빈 워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후보자가 지난 4월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의회의 상원 은행위원회 인준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사진=로이터)
지난 15일(현지시간) 뉴욕채권시장에서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5.12%까지 상승하며 5%선을 돌파했다.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도 4.59%까지 올라 지난해 6월 이후 처음으로 4.5%선을 회복했다. 정책금리에 민감한 2년물 국채금리 역시 4.07%까지 오르며 약 11개월 만의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채권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특히 시장은 2년물 국채금리가 연준 기준금리 상단(3.7%)을 웃돌기 시작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시장이 연준보다 먼저 높은 금리 환경을 반영하며 금융여건을 긴축시키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실상 채권시장이 먼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위즈덤 픽스트인컴 매니지먼트의 빈센트 안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워시는 취임 첫날 금리 인하 선택지를 원했겠지만 채권시장이 그 옵션을 없애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연준 정책 선택지를 좁히고 있다”고 진단했다. 채권 자경단은 정부나 중앙은행이 재정지출 확대나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인플레이션 위험을 키운다고 판단할 때 국채를 대거 매도해 시장금리를 끌어올리며 정책에 압박을 가하는 투자자들을 말한다.

JP모건자산운용의 프리야 미스라 포트폴리오 매니저도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10년물 금리가 4.5%를 넘어선 것은 채권시장뿐 아니라 전체 금융시장에도 위험한 신호”라며 “금융여건 긴축이 본격화되면 시장은 단순 인플레이션 우려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로 이동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미국 재무부가 지난 13일 30년 만기 국채를 5% 금리로 발행한 것은 2007년 이후 처음이다. 시장에서는 막대한 재정적자와 국채 공급 확대 우려 역시 장기금리 상승 압력을 키우고 있다고 보고 있다.

채권시장 불안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 30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사상 처음으로 4%를 돌파했다. 영국 30년물 국채금리 역시 5.85%까지 치솟으며 1998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독일과 스페인, 호주 국채금리도 동반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최근 분위기가 불과 몇 주 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동안 시장은 연준 금리인하와 연착륙 가능성, AI 중심 증시 랠리에 주목했지만 최근 들어 전쟁과 유가, 인플레이션 재확산, 장기금리 급등이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주 주 발표된 미국 생산자물가지수(PPI)가 2022년 이후 가장 높은 상승폭을 기록한 점도 시장 충격을 키웠다.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유는 이날 배럴당 109.26달러로 마감하며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공격 직전 대비 약 50% 상승했다.

특히 이번 인플레이션 압력이 단순한 유가 급등에 그치지 않고 서비스 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이는 연준이 기존처럼 이란전에 따른 유가 상승을 ‘일시적 충격’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의미다.

유가 상승이 서비스 가격 전반으로 번질 경우 워시 체제 연준이 금리인하보다 물가 대응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워시는 연준의 ‘체제 전환(regime change)’ 필요성을 강조해온 인물이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연준이 인플레이션 대응 시기를 놓쳤고 과도한 시장 개입으로 정책 신뢰성을 훼손했다고 비판해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워시가 취임 직후부터 유가 급등과 인플레이션 재확산, 장기금리 쇼크 속에서 정책 선택을 강요받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CME그룹의 연방기금금리 선물 데이터를 보면 12월 연준이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은 약 50% 수준까지 올라왔다.

장기금리 상승은 이제 단순한 채권시장 조정을 넘어 글로벌 자산 가격 전반을 흔드는 변수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RBC캐피털마켓의 로리 칼바시나는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까지 상승할 경우 역사적으로 자산시장 밸류에이션 압박이 커졌다”고 지적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