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브라더' 현실로…美 소도시 뒤집은 'AI 감시카메라' 논란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18일, 오후 01:39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 뉴욕주 인구 5만 2000명의 소도시 트로이(Troy). 지난 2월 한 산업 디자이너가 신생아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에 나섰다가 집 블록 끝에서 정체불명의 장치를 발견했다. 태양광 패널이 달린 카메라였다. 호기심에 인터넷을 뒤져본 그는 곧 등골이 서늘해졌다. 미국 전역에 9만대 넘게 깔린 인공지능(AI) 번호판 인식 카메라였던 것이다. 이 작은 발견은 두 달 만에 도시를 두 동강 냈다. 공화당 소속 시장은 “절대 떼지 않겠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했고, 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는 시장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미국 전역에서 번지고 있는 ‘AI 감시 카메라 반발’의 축소판이다.

(사진=AFP)
◇美소도시 AI 카메라 26대 몰래 깔다 2년만에 발각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로이 주민 디어드리 셰아(39)는 최근 AI 감시 카메라의 정체를 파악한 직후 이웃들에게 ‘트로이의 플록 카메라, 공유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돌렸다. 그는 자신을 “정치 활동가가 아니다”라고 소개하면서도 시민들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다. 트로이 시청 앞에서는 “감시 카메라는 안전이 아니다”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폭로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경찰은 2021년부터 AI 번호판 인식 카메라 업체인 ‘플록세이프티’(Flock Safety)와 시범 계약을 맺고 도심 곳곳에 카메라 26대를 깔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시의회가 이를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35만달러(약 5억 2000만원) 이상 계약은 시의회 승인을 받도록 돼 있는데, 2년 간 156만달러(약 23억 2000만원) 규모 계약이 경찰 단독으로 체결됐던 것이다. 시의회 의장인 수 스틸은 “(계약이) 비밀스럽고 불투명하게 진행됐다”며 “이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와 ‘빅브라더가 보고 있다’는 공포감을 자극했다”고 지적했다.

플록세이프티는 미국 6000여개 지역사회에 카메라를 공급하는 최대 업체 중 하나다. AI 카메라가 지나가는 모든 차량을 촬영해 범퍼 스티커, 총기 거치대까지 담은 디지털 ‘지문’을 만들고, 경찰은 전국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차량 동선을 추적한다. 트로이 경찰은 “탐문수사 거의 전부에 카메라가 활용된다”며 살인 2건을 포함한 강력범죄 해결에 기여했다고 항변했다.

◇시의회 “당장 치워라” vs 시장 “절대 못 떼”…결국 소송

논쟁은 지난 3월 19일 시의회 회의에서 폭발했다. 카메라 설치에 항의하는 주민 150여명이 작은 의회 홀을 가득 채웠다. 이들은 카멜라 만텔로 시장이 발언하려 하자 “거짓말쟁이!”라고 외쳤고, 의장은 의사봉을 거듭 내려쳤다.

시의회가 플록세이프티 대금 지급을 중단시키자, 만텔로 시장은 즉각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홍수·폭설 때나 쓰던 조치를 동원해 밀린 대금 7만 8000달러(약 1억 1600만원)를 우회 지급한 것이다. 트로이 출신 토박이로 경찰 출신 아버지를 둔 만텔로 시장은 “공공 안전을 위태롭게 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두 달 뒤인 지난 13일 시의회는 결국 시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비상사태 선포를 “불법”이라며 즉각 철회를 요구한 것이다. 시의회는 동시에 데이터 보존 기간을 이틀로 단축하는 조례 제정도 추진 중이다. 시장은 이를 “범죄자에게 주는 선물이 될 위험하고 잘못된 정책”이라고 맞받았다.

◇美 60여곳서도 비슷한 논란…ICE 우회 접근도 도마

트로이에서의 논란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진단이다. 플록 카메라 반대 시민 매핑 프로젝트인 ‘드플록’(DeFlock)에 따르면 현재 미 전역에 9만대 이상의 AI 감시 카메라가 가동 중이다.

이 가운데 60곳 이상이 계약을 해지하거나 거부한 것으로 집계됐다. NYT는 “플록을 내쫓아라(Get the Flock Out)”는 구호 아래 텍사스주 소도시 반데라에서는 시의회 계약 종료 의결 뒤 누군가 카메라를 파손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고 전했다.

논란을 더욱 키운 것은 오남용 사례다. 이민세관집행국(ICE) 같은 연방 이민 단속 기관이 현지 경찰을 우회로 삼아 플록 데이터에 접근한 정황이 잇따라 드러났다. 캔자스주에서는 한 경찰서장이 옛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는 데 플록 카메라를 활용한 사실이 들통나 사퇴하기도 했다.

AI 감시 전문가 앤드루 거스리 퍼거슨 조지워싱턴대 법학 교수는 “이 빠져나갈 수 없는 감시망은 경찰에 이전에 없던 새로운 권력을 부여한다”며 알코올 중독자 모임 참석이나 이민 변호사 방문 같은 사적 동선까지 노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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