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햄리(John J. Hamre)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회장 (사진=뉴스1)
세계 최고의 싱크탱크 중 하나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를 이끄는 존 햄리(John J. Hamre) 회장은 이데일리 전략포럼을 앞두고 가진 인터뷰에서 현 국제 정세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질서의 출현이라기보다 전통적 강대국 정치가 더 거칠고 불안정한 방식으로 재현되고 있다”고 진단하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 80여 년간 이면에서 작동해온 강대국 정치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무질서의 진폭이 커진 상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새로운 점은 미국 대통령이 동맹국들을 공격적으로 대하는 방식”이라며 “유럽 동맹국은 크게 동요하고 있으며 아시아 동맹국은 미국의 공약에 대한 불확실성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호르무즈 장기간 봉쇄 땐 세계 경제 충격…전쟁이 변수
햄리 회장은 미·이란 전쟁이 단순한 지역 분쟁이 아니라 글로벌 성장 둔화로 직결될 수 있는 ‘시스템 리스크’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각국이 받는 충격의 형태는 다르겠지만 결국 전 세계가 영향을 받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사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개인적인 문제가 돼버린 듯하다. 해결의 열쇠가 무엇일지 가늠하기 어렵다”면서 “현재 미국은 전투에서 이기는 ‘전술적 승리’를 거두고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 판세를 읽는 ‘전략적 승리’는 이란이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 딜레마”라고 진단했다. 이어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충돌은 이미 전 세계 경제에 파장을 미치고 있다”며 “만약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한 달 이상 더 지속된다면 에너지와 물류 흐름이 막히고 전 세계 경제 성장률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또한 생산자들은 추가적인 생산 설비 투자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햄리 회장은 오늘날의 패권 경쟁을 과거 냉전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규정했다. 과거 냉전이 주로 군사·외교적 대결이었다면 지금은 기술·경제가 경쟁의 중심에 놓였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강한 경제력과 기술력을 갖춘 만큼 기술·산업 생태계에서 경쟁이 훨씬 더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햄리 회장은 “미국, 유럽, 한국, 일본 등이 정부의 역할을 자유와 사회적 책임의 균형으로 보는 반면 중국은 국가가 시민과 기업을 직접 통제하는 모델”이라며 “중국이 서구의 상업적 메커니즘을 활용해 권위주의적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 이 시대의 가장 큰 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어느 국가도 중국이 가진 질량과 추진력을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면서 “중국은 거대한 시장 규모와 투자 역량을 바탕으로 지배적 위치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술 패권 경쟁은 공급망 재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햄리 회장은 지난 30년간 글로벌 기업을 지배한 ‘최저가 생산’ 논리가 코로나19 이후 크게 흔들렸고 이제는 신뢰성과 복원력이 공급망의 핵심 요소가 됐다고 봤다. 기업들이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햄리 회장은 “공급망의 핵심 가치가 ‘최저 비용’에서 ‘신뢰성’으로 옮겨갔다”면서 “한국 기업들이 중국의 생산비 상승과 보호주의 심화 탓에 중국 투자 비중을 줄이고 아세안과 미국으로 향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고 했다.
◇ “메모하는 지도자 드물어…이 대통령의 지적 호기심 인상적”
햄리 회장은 인터뷰 중 이재명 대통령과의 세 차례 면담을 회상하며 특별한 소회를 밝혔다.
햄리 회장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그의 ‘지적 호기심’이었다. 국제 정세에 대해 설명할 때 그는 단순히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경청한 뒤 직접 노트를 꺼내 메모했다”면서 “질문을 던지고 그 답변을 하나하나 기록하는 지도자의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도 매우 보기 드문 광경”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이 대통령의 경청과 기록의 자세를 단순한 습관을 넘어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자국의 실리를 정교하게 찾아내려는 리더십의 의지로 해석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 동맹은 단순한 ‘동맹’을 넘어선 포괄적 파트너십임을 강조하며 미국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로 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햄리 회장은 “한국은 스스로의 방향을 결정할 역량을 갖추고 있다”며 “그것이 바로 ‘전략적 자율성’의 본질이다.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자국의 이익을 다각도로 평가하며 이 길을 걸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이 한국에 흔들림 없고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면서 “(미국은) 한국이 자국의 이익에 따라 스스로 미래를 설계한다는 점을 수용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의 이익과 미국의 이익이 완벽하게 일치한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한편, 햄리 회장은 제17회 이데일리 전략포럼에서 기조연사로 나서 ‘제2차 대분기: 패권의 격돌과 글로벌 질서의 재편’이라는 주제로 한국이 어떻게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더 깊은 통찰을 공유할 예정이다.
◇햄리 회장은...
△1950년생 △존스홉킨스대 폴 니츠 고등국제학대학원 석·박사 △하버드 신학대 록펠러연구원 △제26대 국방부 부장관 △국방부 차관(감사관) △국방정책위원회 의장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회장(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