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자경단`이 돌아왔다…美 30년물 금리 5.18%, 워시 연준 압박

해외

이데일리,

2026년 5월 20일, 오전 07:29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30년 만기 국채금리가 금융위기 직전 수준인 5.18%를 돌파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백악관을 동시에 압박하기 시작했다. 중동 전쟁에 따른 유가 급등, 끈적한 인플레이션, 미국 재정적자 확대 우려가 한꺼번에 겹치면서 투자자들이 장기 국채를 대거 팔아치운 결과다.

월가에서는 1980~1990년대 재정 방만과 인플레이션을 응징하듯 국채를 투매해 금리를 끌어올렸던 ‘채권 자경단’이 돌아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에는 그 화살이 이번 주 취임하는 케빈 워시 차기 연준 의장을 향하고 있다. 백악관은 금리 인하를 원하지만, 채권시장은 오히려 “인플레이션을 먼저 잡으라”고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욕증권거래소 트레이딩플로어에서 트레이더가 심각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사진=AFP)
◇유가·재정적자·인플레 우려…장기채 투매 부추겨

19일(현지시간) 뉴욕채권시장에서 미국 30년물 국채금리는 이날 장중 5.189%까지 오르며 2007년 7월 이후 약 1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10년물 국채금리도 4.683%까지 뛰며 지난해 1월 이후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연준의 단기 정책금리 전망에 민감한 2년물 금리도 4.13%대로 올랐다. 채권금리 상승은 채권가격 하락을 의미한다.

특히 30년물 금리 급등은 단순한 시장 변동을 넘어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와 재정 리스크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10년물 금리는 모기지와 자동차 대출, 신용카드 금리 등 미국 실물경제 전반의 차입비용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파장이 크다.

국채금리 상승은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훌쩍 넘어서면서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가 커진 탓이다. 지난주 발표된 물가 지표에도 에너지 가격 상승 영향이 반영되자 채권 투자자들은 연준이 당분간 금리를 내리기 어렵다고 보기 시작했다.

여기에 미국의 재정적자 우려도 장기금리를 밀어 올리고 있다. 전쟁 비용과 에너지 보조금, 경기 방어성 재정지출이 늘어날 경우 국채 발행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더 많은 국채를 떠안기 위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하게 된다. 이것이 장기물 금리를 끌어올리는 전형적인 경로다.

짐 라캠프 모건스탠리 웰스매니지먼트 수석 부사장은 CNBC 인터뷰에서 “올해 초만 해도 모두가 금리 인하를 예상했고, 그것이 증시 강세론의 핵심이었다”며 “이제는 오히려 금리 인상 가능성을 걱정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30년물 국채금리 추이 (그래픽=CNBC)
◇“금리인하 대신 인상 가능성까지”…시장 시나리오 급변

시장 분위기는 실제 급격히 달라졌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월가의 기본 시나리오는 경기 둔화와 인플레이션 완화를 전제로 한 연준의 금리 인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유가 급등, 견조한 고용시장, 재정적자 확대가 동시에 나타나면서 ‘인하’보다 ‘동결’, 더 나아가 ‘인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는 22일 제 17대 연준 의장에 취임하는 워시에게 가장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지명 전후로 연준이 금리를 충분히 낮추지 않았다고 비판해왔고, 인공지능(AI)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장기적으로 더 낮은 금리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도 해왔다.

하지만 그가 취임하는 순간의 시장 환경은 정반대다. 채권시장은 인플레이션 재확산 가능성을 우려하며 장기금리를 끌어올리고 있고, 연준 내부에서도 당분간 금리 인하 논의는 어렵다는 기류가 강하다.

수브라 라자파 소시에테제네랄 미국 리서치 책임자는 “워시는 인플레이션이 다시 상승하는 시점에 들어오고 있다”며 “그의 비둘기파적 성향은 시장 가격과 연준 동료들 모두에게 도전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은 최근 세 차례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일부 위원들은 다음 정책 방향이 인하가 아니라 인상일 수도 있다는 점을 성명서에 더 명확히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리 인하를 계속 요구해온 인사는 스티븐 마이런 이사 정도에 그친다.

마이클 페롤리 JP모건체이스 수석 미국 이코노미스트는 “사람들은 결국 위원회가 정책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에 안도하고 있다”며 “워시가 올해 안에 금리 인하 논리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시의 첫 과제는 금리 인하가 아니라 신뢰 회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케빈 워시 차기 연준 의장 (사진=AFP)
◇워시 취임 첫 시험대…채권시장 신뢰 회복이 관건

시장에서는 워시의 첫 과제가 금리 인하가 아니라 연준의 신뢰 유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핵심은 연준이 정치적 압박 속에서도 인플레이션 대응 의지를 유지할 수 있느냐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인터뷰에서 워시가 금리 결정을 하도록 두겠다고 말했지만, 지난달까지만 해도 워시가 취임 직후 금리를 낮추지 않으면 실망할 것이라고 공개 압박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워시가 취임 초반 지나치게 완화적인 신호를 보낼 경우 채권시장은 더 거칠게 반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장기금리가 추가 상승하면 실제 가계와 기업이 부담하는 대출금리는 더 높아지게 된다.

월가 일각에서는 오히려 워시가 매파적 메시지를 내야 장기금리를 안정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야데니리서치 애널리스트들은 연준이 향후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하는 이른바 ‘완화 편향’을 제거할 경우 시장의 인플레이션 우려를 진정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줄리아 코로나도 매크로폴리시퍼스펙티브 대표는 “지금 금리 인하로 가는 길은 경기침체를 통과하는 길밖에 없다”며 “전쟁은 재정 부담까지 키우기 때문에 워시는 채권시장의 반응을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가 이날 공개한 글로벌 펀드매니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2%는 미국 30년물 국채금리가 6%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반면 30년물 금리가 4% 수준으로 내려갈 것으로 본 응답자는 20%에 그쳤다.

미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독일과 영국, 일본 등 주요국 장기 국채금리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영국 30년물 국채금리는 5.7%대를 웃돌았고, 일본 30년물 금리는 이번 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고유가와 재정 부담, 국채 공급 확대라는 조합이 전 세계 장기채 시장을 동시에 흔들고 있다.

문제는 장기금리 상승이 금융시장을 넘어 실물경제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이다. 모기지 금리가 다시 오르면 주택시장과 소비가 위축될 수 있고, 기업들의 차입 부담도 커진다.

최근 뉴욕증시가 기술주 중심으로 흔들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AI 기대를 등에 업고 상승해온 성장주는 미래 이익의 현재가치가 금리에 민감하다. 장기금리가 오르면 밸류에이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가렛 멜슨 나틱시스인베스트먼트매니저솔루션 전략가는 “시장은 천천히 오르는 금리는 견딜 수 있지만, 계단식 급등이 나타나면 투자심리가 급격히 흔들린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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